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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category 리뷰/책 2022. 5. 2. 10:16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16년부터 진행된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연구 프로젝트로 진행된 결과물로 근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나오게 되었다.
총 8권으로 나올 예정이고 이 것이 1권이다. 현재 5권까지 나와 있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에 천황제 파시즘이란 용어가 들어가서 진부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저자의 이름을 봤을 때 책이 다루려고 하는 주제와 저자의 이름이 매치가 되지 않았다.
 
저자인 이태진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역사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알 법한 이름이다.
그는 오랜 기간 많은 저서와 연구를 해 왔지만 고종 연구로 이름이 나 있다.
저자도 책 머리에서 자신은 일본사에 문외한이라 여러 도움을 받았노라고 고백하기에 좀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프롤로그를 읽으며 불안이 적당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그는 2002년 요시노 마코토의 『메이지유신과 정한론』(아카시쇼텐, 2002)이라는 책에서 요시다 쇼인이 쓴 『유수록』이란 책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다. 
이 때문에 요시다 쇼인(1830~1859)을 파고들어가기 시작했고 쇼인에 관해 많은 저술을 남긴 도쿠토미 소호(1863~1957)란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에가미 나미오가 엮은 『동양학의 계보』(다이슈칸쇼텐, 1992)을 펼치면서 나카 미치요(1851~1908)을 주목했다. 이는 에가미가 일본 '동양학'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로 그를 첫 번째로 꼽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일제가 '동양사'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경위와 천황제 파시즘을 이끌고 갈 수 있었던 동력과 배경을 파헤친다.
 
그리고 연구서 답게 주석, 다양한 참고문헌과 부록을 제시하여 도움을 준다.
 
요시다 쇼인은 막부에 맞서 존왕양이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다 투옥되어 사망했다.
그는 옥중에서 두 권의 책을 써내는데 사후 8년이 지나 제자들이 『유수록』과 『유혼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유수록』은  증기선 시대가 되어 접근성이 높아진 시대에 일본이 구미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미의 우수한 기술을 배워 주변국을 먼저 차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유혼록』은 자신이 죽고 나서도 대업은 이루어져야 하기에 자신의 혼이 썩지 않고 야마토의 혼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명시했다.
그의 저서를 통해 드러나듯 그는 과연 군국주의의 맹아를 심은 인물이라 할 만하다.
 
책에서 다룬 두 명의 인물 도쿠토미 소호와 나카 미치요 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인물이라 주목하게 되었다.
 
나카 미치요는 청일전쟁 이전 자신이 몸담던 고등사범학교에서 열린 교과목 회의에서 '동양사' 과목 신설을 제안한다.
당시 역사책은 본방사, 지나사, 외국사 등의 이름이 혼재한 상태였다.
나카 미치요는 이를 동양사, 일본사, 서양사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본방사는 일본사로 변경하고, 동양사는 지나(중국)와 주변 민족인 만몽(만주와 몽골) 지역의 역사를 포함한 것으로 하며, 외국사는 서양사로 변경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이전에도 동양사라는 용어는 있었으나 그것은 유럽에서 이야기하는 '오리엔트'(동방)에 인도, 중국, 조선, 일본을 포함한 것으로 나카 미치요가 말하는 동양사와는 개념이 다른 것이었다.
여기서 동양사의 '동양'은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세계를 의미하기에 그는 요시다 쇼인이 말하는 주변국을 역사교육 연구에 적용한 공을 세웠다.
일제의 대륙 진출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합리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동양사 제안을 보면서 현재 일본 우익들의 역사 왜곡의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은 조선을 강제병합하기 이전부터 자기 구미에 맞는 역사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도쿠토미 소호는 당대 일류 저널리스트로 흥미로운(?) 삶을 산 인물이다.
그는 자유민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다가 종국에는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 최고봉 이론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그는 『요시다 쇼인』 평전을 1894년부터 1908년 개정판이 나오기까지 13쇄를 찍어내고, 개정판 출판 이후 1942년이 되면 27쇄를 찍어낼 정도로 요시다 쇼인의 인물됨을 추앙하였다.
이는 『고쿠민신문』의 사주라는 기반 위에 조슈군벌의 인사들과 끊임없이 밀착관계를 만들어내며 언론계 논객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쿠토미 소호는 1913년에서 1918년 사이 4권의 저작을 내면서 두 가지 흐름을 만들어내려 하였다.
첫째로, 황실 중심주의, 천황 직접 통치를 내세워 다이쇼 데모크라시 흐름을 꺾으려 했다.
다른 하나로, 1차 대전 후 독일이 중국에서 확보한 이권에 미국이 개입할 것을 우려하여 이에 대한 대항으로 '반미주의' 를 펼치며 동양은 동양인의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도쿠토미 소호는 1918년에 『근세일본국민사』 집필에 착수하여 완결까지 무려 100권에 달하는 저작을 펴냈다.
이 책은 16세기 전국시대부터 19세기 메이지 시대 성립까지의 역사를 다루는데 1945~1946년 이전까지 77권을 내고 나머지는 1954년에 그가 사망하고 나서 1960~1962년 3년간 출간되며 완결되었다.
1920년 국제연맹이 출범하고 세계 정국이 평화 무드가 되면서 그의 국가주의는 힘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그는 1924년 『야마토 민족의 성각』에서 미국 경계론으로 독일이 차지한 산둥반도를 일본이 수호할 것을 주장했다. 조슈벌의 다나카 기이치가 총리대신이 되어 '산둥 출병'을 단행하며 위기는 전환점이 되었다.
쇼와 시대 도쿠토미 소호는 그의 인맥인 정치적 배경이 사라져서 언론인으로서만 사회적 입지를 유지해야 했다.
1929년 경영난으로 『고쿠민 신문』이 남의 손에 넘어갔으나 『오사카마이니치신문』과 『도쿄니치니치신문』 사주인 동향 선배가 그를 사빈으로 초대하며 그의 필력은 빛을 발휘하였다.
1935년 만주국 8주년 기념으로 건국제가 열리는 해 그는 『만주건국독본』을 지어 축하 제단에 봉고하기도 했다.
1939년 『쇼와국민독본』에서는 세계의 지성을 상대로 황실 중심주의 전통을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책을 펴내면서 일본학을 제창했다. 일본학은 일본 국민이 알아야 할 일본에 관한 일체의 학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대립하는 모든 관계에 입장은 이로써 비일본, 반일본적인 것으로 몰아갔다.
1944년 『필승국민독본』을 지으면서는 "자유주의 퇴치"를 노골적으로 외쳤다. 자유주의민권운동가로 시작했던 그의 삶은 열렬한 황도주의자로 철저히 변모하며 일본제국의 황도를 역설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일본이 황도주의와 군국주의의 흐름으로 나아가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던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화 초기 서구 문물 숭배의 붐으로 자유민권운동이 일어났을 때와 다이쇼 데모크라시.
두 흐름을 잘 이용했다면 일본 국가주의의 흐름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일본 지식계에서도 "메이지유신이라는 과오"에 대한 담론이 나왔다고 한다. (2017년)
이에 따르면 '메이지유신'이라는 용어는 메이지 당대가 아닌 쇼와 시기에 데모크라시 흐름을 뒤엎기 위해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쇼와유신'을 꿈꾸며 메이지 시대 업적을 미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시기가 메이지 원년이기 때문에 그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단순하게는 그 해 유신이 시작되었고 종료 시기는 저마다 다르게 정리하고 있지만 과연 이 용어를 정착시키고 사용하게 만든 것은 언제인지 좀 더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메이지 지도자들은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를 모델로 삼지 않고 천황제 국가주의를 통해 동아시아 세계를 독점하기 위한 목표로 나아갔다.
이는 군국주의의 기치 아래 아시아를 서양으로부터 지켜내고 평화롭게 한다는 미명 하에 청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까지 전쟁을 자행하며 큰 피해를 낳았다.
일본은 이 침략 행위에 대해 국제정세의 변화로 부득이한 조치라 끝없이 변명해왔지만 저자는  한일 모두 외면하지 말고 엄중한 비판과 심층적 고찰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생각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정보들이 있어서 남은 시리즈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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