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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일기2>를 읽으며...

category 일상다반사/책 이야기 2013. 11. 24. 08:50

[421] 김구가 무리한 반탁운동에 나선 데는 순수한 애국심만이 아니라 전국조직 수립 등 임정 법통 강화의 기회로 본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전략가로서는 이승만이 김구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반탁운동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조만식이 극단적 반탁으로 주둔군 및 공산당과의 협력관계까지 포기한 데 역시 애국심도 물론 작용했겠지만, 전략적 판단의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애국자였다는 사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468-469] 3상회담 결정에 대한 “일반 한국인의 입장은 소련과 통하는 것”이었다고 어제 썼다. “일반 한국인”이라 함은 한민족의 통일된 독립국가가 세워지기 바라는 마음을 가졌고, 그 마음을 개인적 이해관계 때문에 크게 굽힐 이유가 없는 한국인을 말한 것이다.


한민족의 통일된 독립국가가 세워지기 바라는 마음을 ‘민족심’이라고 하자.(중국 조선족이 ‘민족주의’ 대신 ‘민족심’이란 말을 쓰는 것은 정치적 조건 때문이지만, 우리가 흔히 ‘민족주의’라 말하는 것을 ‘민족심’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때가 많은 것 같다.) 민족 구성원 가운데 민족심을 전혀 안 가진 사람은 극소수다. 그런데 민족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민족심이 강하고 약한 편차가 크다. 아주 강한 사람은 그를 위해 목숨을 던지기도 하고, 아주 약한 사람은 조그만 이해관계 앞에서도 민족심을 접어놓을 수 있다.


해방공간처럼 가변성이 큰 상황을 바라보며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려는 유혹을 쉽게 받는 것은 다른 적절한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도덕적 평가는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나는 도덕적 평가를 역사 공부의 궁극적 목표로 보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다. 다만 이것이 목표이지,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충분히 확실한 이해에 이르기 전에 도덕적 기준을 섣불리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통일 민족국가 건설을 등진 이승만과 한민당, 그리고 대다수의 경찰관과 자본가들에게 ‘반민족행위자’ 딱지를 붙이는 것이 이 작업의 목적이 아니다. ‘반민족’이란 기준으로 그들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끝내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들 중에 극히 사악한 인물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줄 줄 아는, 나름대로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보통사람’들이 자기 사회의 파멸을 불러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많은 ‘보통사람’들이 이 사회의 파멸을 불러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반민족’ 집단 속에서 ‘보통사람’의 모습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470]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 뉴라이트 세계관의 핵심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발전하면서 키워온 공동체 의식을 부정하는 이런 관점은 인간을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손진과 같은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이런 관점에 포섭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 의식에 기초를 둔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이 흐려진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공익’ 관념이 희박한 야만상태로 몰아넣는 이 전략이 지금도 신자유주의의 기조로 통용되고 있다.


[473] 어떤 세상에서도 우리가 더불어 살 사람들이다. 민족에게서 덕 볼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국가에라도 매달리는 태도, 경찰이라는 현실적으로 괜찮은 직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하는 태도, 생계를 확보하며 분노도 발산할 수 있는 일거리에 매달리는 태도,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상황에 따라 ‘보통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다. 이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싫다면 달나라에 가야 한다.


보통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선택했던 행동을 얼마 후에 후회하는 일이 많다. 그 후회는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다. 해방공간에서 민족심을 접어놓았다가 전쟁이라는 참혹한 결과가 닥치자 자기 정체성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 불행한 사태를 몰고 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았다.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다른 방향도 있다. 민족심과 인간성을 더 철저하게 등지지 못하는 바람에 손해를 입거나 이익을 덜 봤다는 후회다.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축소시키는 방향의 이런 후회는 사람을 ‘어리석음’의 경지에서 ‘사악함’의 경지로 이끌어간다. ‘보통사람’의 범주를 벗어나는 길이다.


해방공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 그 어리석음을 모두 고쳐 완벽한 이상향을 만들 욕심이 내게는 없다. 내가 중시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을 어리석은 행동으로 몰아간 혼란한 상황을 빚어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보통 넘게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고, 더러 사악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악함과 그에 가까운 심한 어리석음, 그것을 집중적으로 반성해서 지금의 세상에서 그와 같은 것을 억누를 수 있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