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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침이 고인다

category 리뷰/책 2013. 5. 31. 21:27



침이 고인다

저자
김애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7-09-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렇고 그런 일상에 단물처럼 고이는 이야기들 달려라, 아비의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소설은 최근 들어 다시 읽기 시작했지만 모두 고전 소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소위 트렌드 소설을 읽는 것은 거의 몇 년만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좀 낯설더니 이내 빠져들었다.

이는 작가의 부담 없는 문체가 이해를 도왔고, 대부분의 단편들이 20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내가 모르지 않는 시간들이어서 좋았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상상력을 얻기 위해서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볼 수 없는 놀라움을 가진 소재나 설정을 채택해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강하지만 허구나 상상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많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늘 감탄한다. 어떻게 저런 설정을 생각해냈지~? 어떻게 저런 소재를 생각했지?

그들은 남들과 다르게 볼 줄 아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런 면모를 배우기 위해서라도 소설을 읽게 된다.

이 책에서는 플라이데이터리코더 단편이 아마 여기에 해당할 것 같다.

 

둘째, 등장인물을 통해서 다양한 삶을 엿보기 위해서다.

다양한 삶을 엿보면서 동시에 나도 따라가면서 여러 삶을 겪는 느낌이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산다 해도 생활 방식과 패턴이 일정하기 때문에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기는 쉽지 않다.

이런 부분을 소설을 통해 대리만족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셋째, 문장력을 보기 위해서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글로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일반적인 문체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 소설 속 문장들은 화려하여 보는 맛이 있다.

그래서 좋은 문장은 적어두고 두고 보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대체로 내가 원하는 세 가지의 사항을 모두 만족시켜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며 울고 웃기도 하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단편이 있다면 『도도한 생활』과 『자오선을 지나갈 때 였다.

 

『도도한 생활』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는 치열한 입시에 목매단 젊은 청춘들의 안타까움이 느껴져서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19] 피아노는 가게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잊혀져 갔고, 나는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불을 이고 집을 떠나온 이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복작이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방에서, 이 거리에서, 이 시장과 저 공장에서, 이 골목과 저 복도에서, 그늘에서, 창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가끔 아무도 모르게 도-도-하고 우는 것은 아닐까 하고.

사람들 저마다 자기도 모르게 까닭 없이 낼 수 있는 음 하나 정도는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고.

어릴 적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으로 큰 집을 사서 입성을 했던 날이 기억이 난다.

그전에는 동생들이 많아서 내 방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제야 큰 집으로 이사를 가서 내 방을 가졌다며 그 때의 기쁨은 참으로 컸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몇 개월도 채 되지 않아 부모님께서 선 보증으로 집이 넘어가서 결국 우리는 반지하인 집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그 때 이후 나는 피부 알레르기가 생겼고 비만 오면 집에 물이 새서 바닥의 물을 퍼내기 바빴다.

 

주인공에게 피아노란 예전에는 사치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사치가 되어버린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런 것이 나에게도 있었으리라. 그 집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그 집을 나올 때는 많이 사라졌다는 게 생각해보니 서글프게 느껴진다.

 

[22] "그럼 누구 잘못이야?"

나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것이 아주 투명한 불행처럼 느껴진다고, 실감이 안 난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당장 내가 내일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마어마한 피로감을 느낀다 해도, 저 너머 도미노의 끝을 상상할 수 없고, 원망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과연 누구 잘못인걸까?

주인공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이 일었다.

당시의 나에게도 이런 치기 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의 세계는 왜 이리 복잡한 게 많은 걸까. 무엇이 이리 뒤틀린 게 많은 걸까 많은 것이 궁금하던 시절이었다.

 

[37] 빗물에서 매캐하고 비릿한 도시 냄새가 났다.

이 문장을 읽자 마자 그 시절 비가 내렸을 때 우리집 공기가 자연스레 떠오르자 몸서리가 처졌다.

아직도 그 시절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41]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흙먼지 사이로 수천 개의 만두가 공기 방울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언니의 영어 교재도, 컴퓨터와 활자 디귿도, 아버지의 전화도, 우리의 여름도 모두 하늘 위로 떠올랐다 톡톡 터져버렸다.

주인공은 빗물에 잠겨가는 피아노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음을 알았을 때 최후를 이렇게라도 그려내고 싶었던 걸까.

묵직해져 가는 피아노의 소리가 내 귓가에 마치 들리는 것만 같아 마음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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