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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첫 명절을 보내다(2013.2.9)

category 일상다반사 2013. 2. 11. 08:10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단어는 부담감과 불안감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설 명절은 결혼 후 공식적인 첫 명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불안감과 부담감이 많았다.

토요일 이른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하고 6시가 넘어 집에서 나왔다.
아주버님과 재수씨와 동행해야 해서 성남에 잠시 들렀다가 7시쯤 출발을 하였다.
다행히 가는 길은 많이 밀리지 않아서 11시 넘어 도착을 하였다.

도착해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도착해 계셨다.
작은어머니들은 음식을 하느라 분주했다.
일단 인사는 간단히 하고 나서 슬쩍 막내 작은어머니 자리 옆에 앉았다.
산적 꼬챙이에 김치와 고기를 번갈아가며 산적을 만들고 계셨다.
어떻게 만들면 되느냐고 물어보니 알려주셨는데
고기와 김치를 납작하게 하여 끼우면 되는 간단한 건데도
내가 만든 것은 영 서툴러 삐뚤빼뚤 하였다.
솔직히 민망했지만 그래도 계속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산적을 만든 후에는 전을 부치는 것을 도왔다.
호박전, 생선전, 산적, 고기김치전, 부두전, 버섯전, 연근전, 고구마전, 당근전 등등...
11시 넘어 시작한 전부치기는 대형 소쿠리 4개를 채우고 나서야 끝이 났다.
다 끝나고 나니 4시가 넘은 시각.
대가족인 시댁은 사람수가 많다보니 늘 이렇게 음식 양이 많다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 전부치기를 이렇게 오래도록 했다.
뒷정리를 다 하고 나니 5시가 되었다.

무릎을 굽히고 몇시간을 앉아서 전을 부쳤더니
무릎이 결리는 것을 느꼈다.
방에 갔더니 남편이 수고했다고 이야기해준다.
둘다 피곤해서인지 시할머님 방에서 잠을 청했다.
2시간여 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시할머님은 저녁시간이 되었는데도 저녁을 차리지 않는다고
작은어머니들을 타박하시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왠지 찔리는 기분...
얼른 반찬통에서 접시들로 담아 내가는 등
밥상을 차리도록 식사를 도왔다.
작은어머니들은 아직 7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저녁 때문에 뭐라고 하신다고 할머님께 서운함을 토로하셨으나
그래도 저녁을 먹으면서는 할머니 기분을 풀어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셨다.
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어쨌든 무사히 그렇게 하루가 갔다.

남편은 작은아버님들과 조카들과 술자리를 한다고 해서
나는 잠시 책을 읽다가 먼저 잠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녘에 옆에서 자는 남편이 심상치 않았다.
술을 얼마나 마신건지 속이 좋지 않아 보였다.
아침 차례지낼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
겨우 일어나 세수하고 차례를 지내기는 했지만 남편은 차례가 끝나자마자 다시 잠을 청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제 벌꿀주를 먹었다는데 그게 몸에 받지 않았나보다.
나는 그것보다는 막걸리 등 술을 섞어 마신 데다 그 양이 많아서 속이 뒤집힌 것 같은데
본인은 끝내 그게 아니라고 우긴다.
음... 솔직히 화가 나기 보다는 걱정이 컸다.
얼마 전에도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또...
처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내가 너무 무르게 대처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인 몸을 너무 학대하니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까웠다.

결국 몸이 좋지 않아 시아버님 산소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와야했다.
운전을 하기 힘들어 결국 아주버님이 하셨고.
다행히 서울을 올라가며 속이 점점 괜찮아서 다행이었지만
남편에게 다음에는 그런 일이 결코 없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본인 몸을 혹사시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군다나 어른들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얼마나 걱정을 하셨겠느냐고 말을 했다.

일을 거드느라 힘든 것도 있었지만
신경을 많이 써서인지 몸과 마음이 모두 다 피로했다.
원래 차에서 잠을 잘 자지도 못하는데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과일 등 선물 세트를 가지고 처가에 들렀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내외, 조카들, 남동생 모두가 있었다.
막내 동생을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를 드리고 간만에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려주신 어머니 덕분에 떡국도 먹고 맛난 밥도 먹었다.
아버지는 딸이 피곤해보였는지 얼른 가서 쉬라는 말씀을 하셨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다는 말을 전하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결혼 후 첫 명절은 이렇게 지나갔다.
뭔가 바쁘게 지나가긴 했는데 허무하기도 하다.

명절에 음식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것은 신체적으로 힘든 것이니 견딜만 한데
붙임성 있게 어른들께 말을 전하고 그런 것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더욱 큰 부담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론 이런 일이 자주 있을 텐데 계속 이럴 수는 없을테지.
조금 더 살갑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아야겠다.
이렇게 명절의 이틀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