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유기체가 ‘이야기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들은 우리가 역사로 인식하는, 서로 겹치는 자취와 흔적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인간과 비인간에 의한 세계 만들기의 수많은 궤적의 기록이다. - P295
소외, 배제의 방식이 아닌 공존의 방식을 이야기할 것이라는 것은 예측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진보’를 거부하는 흐름에서 ‘인간이 공멸하지 않으려면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집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이 다가 아니여서 놀라웠다. 무엇보다 ‘교란’과 ‘오염’이라는 개념이 ‘상생’과 ‘협력’에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의 연구자들은 숲을 비롯한 자연은 인간의 개입이 없어야 자랄 수 있다(일반적인 환경론자들의 생각)고 생각했다. 아마 나도 이 생각에 동조하는 편이고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송이버섯은 일본의 대표적인 산물인데 지금은 귀하디 귀한 송이버섯이 1970년 이후 미국에서 건너온 선충에 의한 소나무 피해로 보기 드문 것이 되었다고 한다(한국도 선충으로 멀쩡한 소나무를 찾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송이버섯은 교란된 환경에서 자란다고 한다. 교란은 ‘예‘ 또는 ‘아니오‘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교란은 개방된 범위에 걸친 불안정한 현상을 가리킨다. 어느 선을 넘었을 때 너무 과하다고 평가하는가? 교란과 관련해서 그것은 언제나 삶의 방식에 기반한 관점 문제다(P286).
저자는 교란에 대한 사례로 일본의 사토야마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일본은 송이버섯을 얻기 위해 중부 산림지의 숲 바닥의 과도한 부엽토를 긁어내고 너무 빽빽이 자란 덤불을 가지치기하는 등 재생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른 생명체도 되살아나는 놀라운 결과가 펼쳐졌다고. 변화한 풍경은 교란에서 시작되었고 인간도 이 세계를 형성하는데 일조했다는 데 그 독특함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오염은 서로 다른 생물종이 서로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나가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기존에 생각하던 오염과는 너무 다른 개념이라 충격적이었다.
숲이 언제든 변화 가능한 것처럼 교란과 오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번역은 과학에서 모순과 양립 불가능의 패치들을 낳는다. 연구와 검토, 읽기가 별도로 이루어지는 한, 이러한 패치들은 훈련과 의사소통의 형식이 교차함에도 지속될 수 있다. 이 패치들은 폐쇄적이지도 않고 고립되어 있지도 않다. 그것들이 새로운 물질을 받아들이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의 독특함은 사전 논리가 아니라 수렴의 결과다. 패치들을 관찰하면 내가 배치라고 부르는 열린 모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여기서는 층을 이루고, 일관성이 없으며, 무질서한 존재론이 심지어 기계의 영역 내에서도 형성된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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