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는 군부 독재가 들어선 뒤 유신 체제로 사회적 감시는 두드러지게 심했으나 역설적으로 한국 여성 문학은 여성을 가정에 가두는 젠더 통치에 대항하고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세우기 시작한다. 특히 신춘 문예나 잡지 등을 통해서 등단하여 전업 여성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외국의 페미니즘 서적 등을 번역하기 시작하는 때도 이 무렵이다. 그 전까지는 여류 문학이라는 용어가 주로 쓰였으나 여성 문학으로 전환하게 된 것도 이 때다.
직업 여성이 늘어나기는 했어도 기혼 여성은 가정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히스테리, 더 나아가 그로테스크함을 표현하는 소재로 선택됐다. 또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속물 근성을 까발리기도 한다. 직업 전선에 뛰어든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수기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여성의 신체를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시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모임 활동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청미와 여류시가 있다.
김자림은 한국전쟁 이후 희곡을 쓰기로 결정하고 신춘 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한국 최초 여성 희곡 작가로서 인정받는다고.
<화돈>에서는 전화 통화를 하는 주부인 ‘나’가 나온다. 기혼 여성이 결혼 생활에 100% 만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서로 맞춰가야만 하는 부분이 많다. 또한 욕망도 결혼한다고 해서 뚝 끊기지는 않는다. 물적 욕망이든 성적 욕망이든 사라질 리 없다, 다만 도덕적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 아닐런지. 소설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인데 통화를 하며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이 나온다. 희곡이라 그런지 말 맛이 참 좋았다.
언니, 난 그 센트럴히이팅에다 불을 지피기 위해서 찌릿한 드릴과 몸서리쳐지는 엽기를 찾아야 했다우. 그러기 위해선 잔인할이만큼 강렬한 사람, 말하잠 나의 과거를 말끔히 소멸시켜 주고 찰나적으로 나를 죽여 주는 사람, 그러면 난 지글지글 타지. 그러구는 아까 말대로 환원하는 거야. 원초의 나로, 다시 구어지니까 말유. 아, 난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맸다우. - 화돈, P40
박완서의 작품은 <나목>, <엄마의 말뚝> 등은 읽어봤었는데 이번에 <닮은 방들>이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처가 살이 중이었던 부부가 아파트로 독립해 나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성냥갑 마냥 똑같은 모양을 한 아파트(한국의 아파트는 너무 비슷한 모양이라 어딜 가나 보는 재미를 주지 못하는데 해외에서 만난 다양한 아파트의 모양과 색감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의 생활은 지루하고 단조롭다. ‘닮은 방들’이란 제목이 이중적 은유로 느껴졌다. ‘닮은 방들’은 아파트고 간음이란 행위는 그 대상만 바뀔 뿐 비슷하고 닮았다.
나는 내 이웃의 무수한 닮은 방들이 끔찍했고 내 쌍둥이 아들을 구별 못 하는 일이 끔찍했고 무엇보다도 한 눈을 애꾸를 만들어 가지고 콩알만 한 유리 조각을 통해 퇴근한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이 끔찍했다. 천정에 달라붙은 20와트 형광등 불빛 밑에서 비인간적으로 창백하고 냉혹해 보여 자기 남편을 아파아트 살인범으로 착각해야 하는 일이 끔찍했다.
내 생활에서 끔찍하지 않은 일은 철이 엄마의 그 <-짐승 같은 새끼>와 간음을 하고 말 것 같은 예감뿐이었다. - 닮은 방들, P71
오정희의 작품 중 장편 소설 <새>를 작년에 읽었었는데 아이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갑갑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작품인 <중국인 거리>를 안 그래도 읽고 싶었는데 여기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한국 전쟁 때 인천의 중국인 거리에 정착했는데 그 경험이 이 소설의 뼈대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조개탄을 때우고 회충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피식했다. 회충약 세대까지는 아니지만 조개탄은 경험해본 적이 있다. 중학교가 공립이다보니 지원이 한정적이었는지 겨울이면 조개탄 땐다고 돌아가면서 아이들이 그것을 날랐던 기억이 난다. 연기도 많이 나고 항상 환기를 해주어야 하는지라 딱히 효과는 없었다.
아무튼 소설 속 중국인 거리는 도처에 외국인들이 돌아다니고 군인을 상대로 성을 파는 여성이 있는 등 부모 입장에서는 위험한 것들이 난무한 곳이다. 전후 어지럽게 널려 있는 터전 속에서 빈곤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시의 정상에서 조망하는 중국인 거리는, 검게 그을린 목조 적산 가옥 베란다에 널린 얼룩덜룩한 담요와 레이스의 속옷들은, 이 시의 풍물이었고 그림자였고 불가사의한 미소였으며 천칭의 한쪽 손에 얹혀 한없이 기우는 수은이었다. 또한 기우뚱 침몰하기 시작한 배의, 이미 물에 잠긴 고물이었다. - 중국인 거리, P188~189
김승희는 1973년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되었으나 전공은 현대시인데다가 미국에서 한국 현대시를 가르친 이력이 있고 1979년 첫 시집을 낸 이후에 계속하여 꾸준히 시집을 내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태양’과 ‘어머니’가 많이 등장하는데 마치 빛의 반대에는 어둠이 있듯 현실과 꿈은 다름을 말하는 듯하다.
<태양미사>의 시는 읽으면 바로 느낌이 올 정도로 그동안 읽었던 시들 중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어둠이 태양을 선행하니까
태양은 어둠을 살해한다.
현실이 꿈을 선행하니까
그리고 꿈은 현실을 살해한다.
구름의 벽 뒤에서
이제는 태양을 산책하는 독수리여,
나는 감히
신비스런 미립자의 햇빛 파장이
나의 생을 태양에 연결시킬 것을
꿈꾸도다.
…
- 태양미사, P227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작가로 석정남을 만날 수 있다.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 올라와 양장점, 피복 공장, 전자회사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고 한다. 자연스레 그의 글에는 노동자로서 겪는 현실에 대한 부당함과 불만을 고발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 특히 1978년 그가 실제로 일하기도 한 인천 동일 방직에서 노동자를 해고한 사건을 연극에 올리고 동지 회보를 만드는 등 복직 투쟁에 나서기도 했던 면에서는 실천적 노동가의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노동자로서 일을 하면서도 문학인으로 살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었다고 하니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회사를 상대로 어떤 투쟁을 했는지 그의 소설을 통해 생생히 느껴볼 수 있다.
3월 14일
우리 회사의 장래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만약에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 나의 책임은 무겁다. 내년 이때쯤 나는 우리 집의 가장 노릇을 해야 된다. 가장의 월급이 8,000~9,000원 가지고 어떻게 한 가정이 살 수 있을까? 어떻든 빨리 미싱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 인간답게 살고 싶다, P234
죽도록 일만 하고 밥 먹고 잠자고, 이런 일은 너무나 무의미하다. 이건 뭐 밥을 먹기 위해서 사는 벌레나 마찬가지의 생활이다. 나는 가끔 시라는 형식의 글을 써 놓고 훌륭한 작품이라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 기뻐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보면 정말 보잘것없는 글이라는 것을 알고 나의 무능력에 대한 깊은 실의에 빠진다. 노력이 부족한 탓일까. - 불타는 눈물, P239
<인간답게 살고 싶다> 발췌문을 읽는데 과거 내 일기를 보는 줄 알았다. IMF가 터지고 나서 입사 후 회사를 여러 번 옮겨 다녀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월급이 과연 제대로 나올지 전전긍긍하며 지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덜너덜 피폐했다는 말이 딱이다. 그 때 일기를 열어보면 하나 같이 우울한 감정 뿐이었다.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한숨과 투쟁이 오롯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여성문학은 글쓰기의 매체가 생겨나며 여성들이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해진 시기였다. 글쓰는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하고 사회적 모순과 비판에 대한 문학 소재도 여전히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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