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문학 선집 2권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의 여성 문학을 다룬다. 특히 중점적 시기는 1930년대다.
1919년 삼일운동 이후 1920년대가 되면 사회주의 사상 유입으로 독립 운동은 반제국주의, 반식민 운동으로의 성격이 강해진다. 1925년 보안법 강화, 1928년 조선공산당 해체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계급 차별 운동 등으로 이어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 민족, 계급은 근대문학 형성기를 특징 짓는 키워드들로서 좌와 우로 진자 운동을 하며 어떤 범주를 우선시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편소설, 장편소설, 서정시, 서사시와 같은 근대적 양식이 본격적으로 실험되고 정착한 시기이기도 하다. …
여성문학 역시 1930년대 들어서면서 근대 초기 여성의 자각과 계몽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식민 현실과 교섭하면서 계급과 민족, 성 간의 교차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 P17
1930년대는 여성문학이 식민 현실을 젠더의 시각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려 낸 시기였다. 난민이나 유민이 된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공감과 연대의 윤리로 포착하는가 하면 남성 중심의 가족 로망스와 윤리를 내파했다. 남성 중심의 문학장이 여성에게 부과한 '여성적' 글쓰기라는 틀과 '여성성'의 개념을 영리하게 전유해 여성성, 여성적 글쓰기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석자와 가치 부여자에 따라 유동적이고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 P34
박화성은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을 잇는 제2기 신여성 작가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여성 문제에 대한 의식은 다소 약하다고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에서 여성을 주인공이나 화자로 내세워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목도하고 부딪치면서 제 나름의 현실 의식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그리며 보수적 성 규범을 탈피한 여성상을 창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록된 '추석 전야'는 노동 수탈과 성적 수탈을 함께 보여주는 소설이라 개인적으로 눈길이 많이 갔다.
영신은 전일부터 빈부와 계급에 대한 반항심을 잔뜩 가지고 있었으며 더구나 감독의 평소 행위를 몹시 미워하던 터이라 떨리는 입술로 "그러면 당신이 왜 먼저 그따위 짓을 하느냐 말이야. 감독이면 점잖게 감독이나 하지 어린애들 머리를 잡아당기며 부인들을 건들며 그따위 못된 짓을 하니 누가 좋다고 하겠소. ... 우리는 개만도 못하게 보이오? 우리도 사람이야 사람.
주인에게 갑시다. 내가 당신이 하던 짓을 다 말하고 결단을 낼 터이니..." - 추석 전야
공장 감독은 여성 노동자를 희롱하고 이를 본 동료 영신은 분노하여 감독에게 따진다. 애당초 기본 자금이 있을 리 만무한 가난한 계급의 노동자, 그것도 여성들은 계급 차별 뿐 아니라 성차별까지 감내야 하는 현실에 내몰렸다. 이를 보면서 1960년대 가발, 1970년대 의복 공장의 노동자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이 때의 여성들은 가장 노릇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제목처럼 하필 추석이라는 시점이 절묘하다. 가족들이 모여서 화기애애해야 할 명절이지만 주인공은 사치와 여유 따위는 부릴 수가 없다. 자본주의란 이들에게 험난함의 대명사 같은 것이다. 일하다 어깨를 다친 영신은 밀린 아이의 월사금과 붉은 댕기를 사달라 조르는 아이의 마음을 내칠 수 없어 급하게 일거리를 찾는다.
어릴 적 공과금, 급식비, 회비 등을 내지 못해서 자주 불려나간 경험이 있었다. 당시는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으나 나중에 내가 직접 돈을 벌어보니 부모님이 그 때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겠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강경애는 빈농의 딸로 태어났기에 무산 계급에 대한 차별에 대한 분노와 저항 의식이 작품에서 눈에 띤다. 식민지 시기 대표적인 여성 단체였던 근우회에도 참가했다. 결혼해서 용정으로 이주한 뒤 조선인들의 현실을 담은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다. 만약 1944년 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해방 후 어떤 작품을 남겼을지 참 궁금하다.
소금은 예로부터 모든 양념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식재료 중의 하나로 귀한 취급을 받아왔다. 조선의 장 문화도 소금이 없으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당시 국경 근처에는 밀수입업자들이 목숨을 걸고 소금 거래를 위해 오갔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본은 독립운동가 색출을 위해 친일 무장 조직을 만들었고 이는 독립운동 뿐 아니라 당시 근처에 거주 중인 조선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는 하나하나의 메주 덩이를 들어 보며 간장이나 서너 동이 빼고 고초장이나 한 단지 담그고... 그러자면 소금이나 두어 말은 가져야지 소금... 하며 그는 무의식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 또다시 고향을 그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향서는 소금으로 이를 다 닦았건만... 달리는 데도 소금 한 줌이면 후련하게 내려갔는데 하였다. 그가 고향 있을 때는 하도 없는 것이 많으니까 소금 같은 데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는지는 모르나 이곳 온 후로는 그는 소금 때문에 남몰래 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소금 한 말에 이원 이십 전! 농가에서는 단번에 한 말을 사 보지 못한다. 그러니 한 근 두 근 극상 많이 산대야 사오 근에 지나지 못한다. - 소금, P216
봉염의 어머니는 소금 밀수입을 위해 뛰어든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그녀는 다른 남성 밀수업자들의 대열을 따라 붙었다. 솜옷을 입은 다른 밀수업자와는 다르게 봉염 어머니는 홑옷을 입은 데다가 발가락 나온 고무신을 신은 채 걸어야 했다. 남성 밀수업자들은 여섯 말의 자루를 든다고 하길래 호기롭게 네 말을 들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움을 견딜 수 없다. 가다가 순사를 만나거나 활동가들을 만날까봐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일본은 1925년 보안법 행사 이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가했다. 소설의 결말은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흘러간다.
모윤숙은 당시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다. 1940년대 조선임전보국단에 간사로 활동하면서 조선 여성을 적극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해방 후에는 친미, 반공주의 입장에 뛰어들었다. 노천명도 식민지 말 친일 부역을 한 이력이 있으나 해방 후에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두 작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작품적으로도 노천명은 모윤숙의 강렬함과는 다르게 감수성이 더 느껴지는 편이다.
해여진 치마보고 간난을 슬퍼할 때
어대선지 그얼굴은 가만히나타나
깨여진창틈으로속삭입니다
너는조선의딸이아니냐고.
그리운사람있어 눈물질때면
내억개 가만히 흔드는이있어
자비한목소리로들여줍니다
인생의전부는사랑이아니라고.
- 조선의 딸, P362
산넘어지나온저촌엔
은반지를사주고싶은
고운처녀도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네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나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남사당, P368
이들을 비롯해 송계월, 지하련 등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송계월은 짧은 삶을 살다 가서 참 안타까운 작가인데 이전에 전집을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 못해서 더는 미루지 말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송계월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등 계급과 여성 문제에 천착한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지하련은 일제 시기 지식인의 내면에 대한 심리 묘사를 다룬 작품을 여럿 남겼다는 점이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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