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80년이나 전에 저희보다도 더 큰 곤란을 무릅쓰면서 이 일본에 도착하려고 하셨던 성 프란체스코 자비에르 신부님의 일이 가슴에 되살아났습니다. 그분 역시도 이와 같은 폭풍의 습격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에 우윳빛의 뿌연 하늘을 바라보셨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 후 몇십 년 동안 수십 명의 선교사나 신학생들이 아프리카를 돌고 인도를 지나 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가 선교하려 했을 테지요. (...)
무엇이 그들에게 이 커다란 고통을 인내하게 했는지, 무엇이 그들에게 이 위대한 정열에 몸을 던지게 했는지 이제야 그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도 모두 이 우윳빛의 뿌연 구름과 동쪽으로 흘러가는 검은 구름을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또 그들이 그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것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38~39)
1637년 일본 규슈 북부의 시마바라에서 기독교인들이 대규모 민란을 일으킨다. 당시 영주는 가장 상위 계급으로 부락민들과 무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졌고 무사는 영주를 호위하며 절대 충성했다. 부락민들은 해마다 세금을 바쳐야 했는데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갖은 탄압과 형벌을 가했으므로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일본은 1549년 예수회 선교사인 프란치스코 사비에르가 가고시마에 도착한 뒤 가톨릭 포교가 시작되었다. 그 후 예수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미니코 수도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등의 로마 가톨릭 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1624년경에는 신자 수가 65만 명에 이르는 교세를 갖게 된다. 하지만 158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기독교를 금지하는 명령(바테렌 추방령)이 내려지면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된 이래 1597년경 나가사키에 26명의 신도들과 수도자, 성직자들이 순교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636년 일본은 데지마 섬을 만들어 서양과의 교류 통로를 일원화시키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는데 그 계기가 된 사건이 시마바라 난이다. 이 사건은 이렇게 기독교 박해 뿐 아니라 막부의 가혹한 세금 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시마바라의 난 이후, 영주는 잠복한 그리스도들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파견된 관리들은 부락을 돌아다니며 순찰을 하고 가택을 침입하기도 하며 수상한 자가 있으면 신고하도록 한다. 신고자들에게는 물질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사제가 지내는 곳을 보고하면 은 300냥, 수도사를 신고하면 은 200냥, 신도를 발견하면 은 100냥을 지급함으로써 가난한 농민이나 어부들에게는 참으로 유혹적인 조건을 내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수도사나 선교사들은 일본에 들어오기 어려워졌으며 들어오더라도 암암리에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로마 교황청에 일본에 파견되었던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혐의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다. 페레이라 신부는 그동안 일본의 가톨릭 탄압에 대한 끔찍한 실태를 지속하여 보고해왔기 때문에 교황청 사람들은 그가 배신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페레이라 신부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고 잠복 선교도 하기 위해서 세 명의 신부들(가르페, 마르타, 로드리고)이 출발한다. 그들은 페레이라 제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험난한 파도를 뚫고 우여 곡절 끝에 일본 육지인 도모기라는 어촌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신도를 만나고 신도들의 자체 조직이 있음을 알고 신부들은 놀란다. 고토라는 곳에서 신부들은 신도들에게 세례를 시행하고 고해성사를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관헌들의 습격으로 나가사키에 취조를 받기 위해 기치지로가 선발되었으나 여기에 두 명의 사람이 자원하며 함께 간다. 기치지로는 가톨릭 신도였으나 이전에도 배교했다 한참 만에 마을로 돌아온 이력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배교하고 자취를 감춘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P85)
"나는 약해요. 나는 모키치나 이치소우처럼 강한 자는 될 수 없어요." (P123)
기치지로의 행동은 사실로만 보면 비열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로드리고처럼 저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믿음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말이다.
기치지로는 배교를 감행함으로서 풀려났지만 두 사람은 바다에서 순교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저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로드리고는 오두막에 피신해있다가 페레이라가 배교한 신부 중 하나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용서를 구하며 접근한 기치지로의 고발로 그는 감옥에 갇힌다.
이후 로드리고는 온갖 회유로 배교를 강요 당한다. 게다가 다른 신도들이 자신으로 인해 탄압을 받는다는 사실에 괴로움은 커져간다. 그는 외친다. '하느님은 왜 침묵하십니까.'
"나만 처벌해 주시오."
"당신 때문에 저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될지." (P135)
가톨릭 신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다던 나가사키 부교오인 이노우에는 막상 온화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로드리고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악인이라고 해서 악인의 모습이기만 할까 생각했다. 어떤 사람도 천사 또는 악마는 아니며 여러 얼굴을 갖고 있을 것이니까.
'주여, 이 이상 저를 버려 두지 마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태로 저를 버려 두지 마십시오. (...)
이윽고 내가 죽임을 당하는 날도 여전히 바깥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갈 것인가. (...)
그렇게까지 영웅이 되고 싶은가.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받고, 그리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인가.' (P187)
어쩌면 이 독백이 로드리고의 자신의 예견하는, 끝을 향한 고민이었을지.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이 책의 로드리고라는 인물은 이름과 출신은 다르지만 실존 인물이다. 실제는 '주세페 키아라'라는 시칠리아 출신의 신부로 1643년 일본에 들어갔다 체포되어 1685년까지 살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선악이란 이분법이 존재할까.'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온갖 방법으로 '배교'를 강요당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황은 다르지만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에게 배신을 강요하던 앞잡이들과 민주주의 운동가들에게 탄압을 가하던 경찰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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