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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역사저널 그날 고려편 2

category 리뷰/책 2023. 10. 11. 17:41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2권은 거란의 2차 침입부터 무신 정권의 지도자인 최충헌이 들어설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책이 두껍지 않기 때문에 <무신 정변>을 깊이 다루어주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대중들이 사건의 배경과 전개 과정, 결과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고려의 역사를 처음으로 배울 때 ‘무신 정변‘(과거에는 무신의 난이라고 하기도 했었던)이 흥미로운 사건이라 생각했음에도 지도자가 바뀌는 과정이 복잡하거나 어려워서 오히려 공부를 등한시했었다. 하지만 ‘무신 정변‘은 고려 시대의 전기와 후기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며 무려 100년간 이어진 이 시기에 몽골의 침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1. 우리는 거란의 침입에 대처한 고려의 인물로 보통 ‘서희‘는 알고 있어도 2차 침입 때 협상을 주도한 하공진과 후방 공격에서 활약한 양규는 잘 알지 못한다. 거란이 2번째로 침입하자 현종은 강감찬의 권유에 따라 나주로까지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비슷한 것으로 조선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길에 행차한 게 떠오르지만 이 때 고려는 하공진을 사신으로 보내 협상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도 동시에 했다. 양규의 활약은 알고 있었으나 거란과 협상한 하공진은 훨씬 덜 알려져 있기에 안타깝다. 그는 그 때 인질로 잡혔는데 거란으로 귀부할 것을 종용받았으나 거절하면서 살해되고 말았다. 꼭 기억해두어야 할 분이 아닐 수 없다.

2.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피난하던 중 공주절도사인 김은부를 만나 눈도장을 받게 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외부인의 침입으로 민심이 흉흉했기 때문에 현종의 피난길은 아주 험악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김은부가 대접을 잘해주니 현종 입장에서는 없던 총애도 생길 수밖에 없다. 김은부의 세 딸이 왕실과 혼인하게 되면서 그는 문벌 귀족 세력의 하나(안산 김씨)로 올라서게 된다. 또 하나의 문벌 세력인 인주 이씨는 김은부의 처조카인 이자연(이자겸의 아버지)의 딸이 문종의 왕비가 되면서 성장하게 되는 세력이다. 김은부 딸이 왕실과 혼인하게 된 사건이 왜 중요하냐면 최초로 외부 세력이 왕실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기존까지 고려 왕실의 결혼은 왕실 근친혼이었다).

3. 12세기에는 북쪽에서 힘을 키운 여진이 고려에 침입한다. 1차 침입 때 윤관의 활약(기만 전술)에도 불구하고 고려가 패배하였으나 3년 간 별무반을 만들어 열심히 기병을 보강한 뒤 2차 침입 때는 여진족이 점령하고 있었던 영토에 9성을 쌓아올리는(동북9성) 쾌거를 거둔다(동북9성의 위치는 일반적으로는 두만강 북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 않아 학계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아쉽게도 2년 만에 동북9성을 다시 여진에 내어주게 되면서 윤관은 그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여진이었을 때도 힘이 만만치 않았지만 금나라는 차원이 다르게 막강했다. 금은 처음에 형제 관계로도 만족했으나 나중에는 군신 관계를 요구하였고 실리상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쉽게 느껴지겠지만 그 때 사람이라 생각해보면 최선이 아니었나 싶다.

4. 이자겸은 딸을 예종에 보내고 그 아들인 인종이 왕위에 오른 후 다른 두 딸도 인종에 시집을 가면서 그는 외조부이자 장인으로 명실상부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 그 시기 인종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인종은 이자겸의 권력이 강해지자 이를 견제하고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자겸을 공격한다. 또 이자겸이 오른팔인 척준경과 틈이 벌어지는 것을 알고 이 갈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자겸이 오히려 조연이고 인종이 주인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자겸이 워낙 유명한 문벌귀족세력의 대표 수장이어서 위세가 등등해서 인종의 행동이 뒤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5. 묘청이 ‘서경천도운동‘(수도를 서경으로 옮기고 금나라를 정벌하며 왕을 황제로 칭하고 연호를 사용하자 주장) 사건을 일으킨다.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주장은 ‘국가의 자주권‘를 원하는 백성들에게 먹히는 점이 있었다. 서경천도운동을 김부식이 진압하면서 두 세력은 충돌했다. 묘청의 주장 자체는 그럴싸 했지만 결정적으로 신룡의 침(기름을 넣은 떡을 물에 던져 놓고 물에 떠오른 기름이 무지개처럼 나타난 효과를 보고 이는 상서로운 일이니 서경으로 천도해야 한다)으로 무리수를 두며 자멸의 빌미가 된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신채호 선생님의 말인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 문장만 보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위대한 혁명 운동처럼 비쳐지지만 그것은 분명한 오해다. 묘청이 자충수를 두면서 이후 진취적인 개혁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움을 담은 것이다. 백성들은 호응했지만 당시 금국 정벌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다고 보이지 않을 뿐더러 무리한 서경천도운동 주장으로 그 운동은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6. 무신정변은 하위 지배층인 무신들이 고위 지배층인 문신들을 누르고 집권 세력으로 올라선 사건이지만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없다. 왕인 의종의 정치적 무능과 고려 초기 이후 계속된 무신들의 지위 상승, 지배층의 분열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일어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의종은 책에서 말하길 고려판 연산군이라고 패널들이 이야기하는데 에피소드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한다. 정사는 돌보지 않고 향락과 유흥에 빠져 있었으며 대간들을 쫓아내고 환관과 내시를 주변에 두어 측근정치를 강행했으니 지금으로 보아도 언제 탄핵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의방이 의종을 폐위하고 문신 세력을 모두 몰아내면서 단독자로 올라선다. 이후 정중부(권력욕이 강했음)->경대승(복고를 표방)->이의민(행동대장 스타일)으로 집권자가 변화되지만 그들은 자신들끼리의 투쟁, 살육, 파괴를 이어가면서 백성들에게도 명분을 얻지 못했다. 경대승은 무신정변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이었던데다가 그나마 도방을 세우고 문신 인사들을 등용하려고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잘 되지는 않았다.
이후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무신정권의 최씨 집권기가 시작된다. 그는 백성의 눈을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권력을 독점하면서 사병을 강화하는 등 국가를 위한 힘이 아닌 사적인 힘을 키우는 데 골몰했다.

3권은 남은 무신집권의 시기와 몽골과의 투쟁기가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