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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피에 젖은 땅

category 리뷰/책 2023. 9. 19. 16:10
 
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은 이차대전사 연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출간된 해에 다섯 개 상을 수여했고, 또 다른 네 개 상의 결선작에 진출했다. 각 나라의 유력 매체 여덟 군데서 ‘올해의 책’으로 꼽았을 뿐 아니라, 앤터니 비버, 새뮤얼 모인, 앤 애플바움 등이 최고의 연구이자 글쓰기라고 상찬했다. 스나이더는 영어, 독일어, 이디시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폴란드어, 벨라루스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로 쓰인 자료를 섭렵하며 16개 기록보관소를 뒤져 이차대전사의 전모를 그려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국제적인 집단 기억이 1970~1980년대에 등장했을 때 초점은 독일과 서유럽 유대인들의 경험에 두어졌고, 희생자 중에서도 소규모인 아우슈비츠(학살 유대인 6명 중 1명만 관련됨)에만 관심이 집중됐다. 서구와 미국의 역사가 및 기념운동가들은 아우슈비츠 동쪽에서 희생된 500만 명의 유대인과 나치에게 죽은 500만 명의 비유대인 희생자는 간단히 넘겨버렸다. 또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과 영국군은 블러드랜드에 전혀 이르지 못해 주요 살육 현장을 하나도 목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방에서 특히 유대인이 많이 죽어간 사실과 서방에서의 지리적 조건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홀로코스트는 유럽사에서 제자리를 찾았다고 볼 수 없다. 그동안 서구인들이 수집한 자료는 블러드랜드에서 일어난 일을 일부조차 밝히지 못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잔학 행위는 하나의 땅에서 하나의 시대에 치러졌다. 1933~1945년 ‘블러드랜드’에서. 블러드랜드는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연안국들에 이르는데, 당시 여기서 1400만 명이 죽었다. 블러드랜드는 나치와 소련의 힘 그리고 악의가 얽히고설킨 땅이었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희생자의 대부분이 그 땅 출신일 뿐 아니라 다른 곳 출신들의 살육 정책에도 그 땅이 중심지가 됐기 때문이다. 가령 독일은 540만 명의 유대인을 죽였는데, 400만 명 이상이 블러드랜드 출신이었다. 비유대인 희생자들도 블러드랜드 태생이거나 혹은 그곳에 끌려가 죽었다. 독일은 전쟁포로수용소와 레닌그라드 및 다른 도시에서 끌고 와 400만 명 이상을 굶겨 죽였는데, 고의적 기근으로 죽게 된 사람 대부분은 블러드랜드 태생이었다. 스탈린의 대량학살 정책의 희생자들은 소련 전역에서 모든 땅을 훑으며 나왔지만 그럼에도 결정적 철퇴가 내리쳐진 곳은 소련의 서쪽 변경지대인 블러드랜드였다. 이 책은 각 나라의 자료들을 섭렵해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지성사를 포괄하면서 정치적 대량학살의 ‘진실’에 가장 근접하는 방식으로 전체상을 드러내려 시도한다. 특히 ‘심층적인 어둠의 상징’과 같은 한나 아렌트의 말이 담지 못한 실체들, 프리모 레비와 같은 생존자들의 기록 너머에 있는 진실, 히틀러와 스탈린을 떨어뜨려놓고 다뤘을 때 놓치게 되는 허점 등을 보충하며 확실한 ‘팩트체크’를 한다. 연구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과거의 어떤 사건도 역사적 이해를 초월할 수 없으니 그 틀 내에서 살펴볼 것. 둘째, 당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확실히 있었는지에 대해 숙고할 것. 셋째, 수많은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스탈린과 나치의 정책을 시기순으로 정연히 따져볼 것. 특히 세 번째는 희생자의 지리학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문제다.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
출판
글항아리
출판일
2021.03.05

 

제목을 보고 내용이 짐작 가능한 책들이 있다. 이 책은 내겐 그렇지 않은 책이었다. ’피에 젖은 땅’은 BloodLand의 번역어이다. 이는 소련 서부로 구체적으로는 지금의 러시아 서부 일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폴란드를 의미한다. 그럼 이 땅에서 피에 젖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을 예상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역사 분야의 신간이 나오면 으레 살펴보기 마련인데 이 책이 발간된 무렵도 그랬다. 다만 시간을 두고 읽기를 원해서 미루어 두었다(역사 하위 분야 중에서도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으면 신간을 바로 사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 궁금한 경우가 아니면 좀 묵혀 두었다 평가를 보고 읽는 편이다). 그동안 보관함에 묵혀두었다가 다른 신간이 나왔길래 이 책으로 미리 예열을 해볼까 해서 이제 접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전체적으로 앞 수식이 길고 명사로 끝나는 문장의 번역어 투가 강해서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사용하는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이 안 되어서 잘 읽히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중반 이후에는 독자도 문체에 적응하기 마련이어서 나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치주의와 스탈린 체제는 블러드랜드에서 1400만 명 이상의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1932년 스탈린은 소련령 우크라이나에 집단화 정책을 실시하며 300만 명을, 1937년에서 1938년 사이에는 대공포 실시로 부농들과 소수 민족 70만 명을 학살했다. 1939년에서 1941년 사이 소련과 독일이 합동하여 폴란드 국민 20만 명을 학살했다. 1941년 스탈린을 배신하고 전쟁을 선택한 히틀러는 소련 전쟁포로와 민간인 400만 이상의 목숨을, 점령지 소련과 폴란드, 발트3국에서 540만 명의 유대인의 목숨을, 벨라루스와 폴란드 바르샤바의 빨치산 전투로 50만의 민간인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사건에 가담한 인물, 그리고 관련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이 책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숫자 안에 포함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집중하여 읽었다. 

 

1932년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진 집단화 정책으로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 무렵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동요가 아이들에게 불렸다고 한다. 이는 결코 아름다운 동요가 아니라 잔혹한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동요에서 당시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스탈린 아버지, 이걸 보세요

집단농장은 정말 정말 멋지다나요

오두막은 망가졌고, 헛간은 꼴랑 내려앉았죠

말은 몽땅 지쳐서 주저앉았죠

오두막에는 망치와 낫이

헛간에는 죽음과 굶주림이 있대요

소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고, 돼지도 몽땅 사라졌대요

꼴랑 벽에 걸린 스탈린 아버지 사진만 있대요

아빠 엄마는 집단농장에 계세요

불쌍한 아이는 혼자 울면서 걸어간대요

빵도 없어요, 기름기도 없어요

공산당이 모조리 쓸어갔어요

친절함도 부드러움도 쓸려갔어요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어요

당원은 아버지를 때리고 밟고

우릴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버리죠

 

1937년과 1938년 사이 대공포 시대 소련 서부 지역은 살육과 매장이 곳곳에 자행되었다. 일명 폴란드 박멸 작전으로 내무인민위원회 전담은 갑자기 마을에 나타나 지정된 숫자의 사람을 잡아들이고, 고문과 자백을 강요한 뒤 처형을 집행했다. 

체포된 남편의 아내들은 음식과 깨끗한 속옷을 들고 매일 의례적으로 면회를 갔다. 간수들은 더럽혀진 속옷을 건네주었다. 더럽혀진 속옷은 남편이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기에, 아내들은 기쁜 마음으로 속옷을 받았다. 간혹 남편들이 몰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 남편은 아내에게 보낸 속옷에 이렇게 적었다. “감옥생활이 너무 힘들어. 난 죄가 없는데.” 어떤 날은 속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 이튿날에는 속옷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남편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음을 의미했다. 

 

1941년 레닌그라드 봉쇄가 있었던 겨울의 기온은 혹독했는데 사전에 비축해둔 식량과 땔감, 물이 떨어지자 10년 전 우크라이나의 기근의 상황이 이 곳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레닌그라드 포위 당시 소녀였던 반다 즈비예리예바는 훗날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며 그녀를 향한 사랑과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는 참 아름다운 분이었어요. 그분의 얼굴은 모나리자와도 견줄만했을 겁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아 그리스 여신상을 만들 만큼 예술가적 기질이 충만한 물리학자였다. 온 가족이 배고픔에 쓰러져가던 1941년 말,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구할 배급 카드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반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낫을 든 채 그녀 곁에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저항했고 어머니를, 아니면 “그녀의 모습만 하고 있던, 그녀의 그림자”를 떨쳐냈다. 즈비예리예바는 어머니의 행동을 자신을 구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했다. 자신을 빨리 죽여줌으로써 굶주림에 더는 고통받지 않게 해주려고 그랬으리라. 이튿날 그녀의 아버지가 먹을거리를 가지고 돌아왔지만, 어머니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불과 몇 시간 뒤 어머니는 숨이 멎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시신을 묻을 수 있을 만큼 땅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그녀의 시신을 바느질한 담요로 감싸 부엌에 놓아두었다. 아파트가 너무나 추웠기에 어머니의 시신이 썩는 일은 없었다. 봄이 되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전쟁에서 밀리게 된 히틀러는 유대인 절멸에 대한 계획을 실천해 나간다. 

 

“러시아 중부” 나치 친위대 상급 장교 및 경찰 지휘를 맡은 이는 벨라루스에서 여성 및 아이를 죽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느 독일인(오스트리아인) 경찰은 부인에게 쓴 편지에서 10월의 첫째 날 벌어진 유대인 사살 작전에 대한 자신의 심경과 경험을 밝히고 있다. “처음으로 총구를 당겼을 때, 내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소. 허나 누구나 이내 익숙해지는 법이지. 열 번째가 되자 나는 수많은 여자, 어린이, 심지어 갓난아이까지 차분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조준 사살하게 되었다오. 내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은 이 무리들을 살려두면 이들이 분명 내가 그들에게 했던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집에 있는 우리 두 젖먹이에게 그 못지않은 짓을 하리라는 것이었소. 우리가 그들에게 선사한 죽음은 게페우GPU 교도소의 수천만 명이 겪은 지옥 같은 고통에 비하면, 오히려 고통 없이 빠르게 죽여주는 아름다운 것이었소. 젖먹이들은 큰 원을 그리듯 공중으로 내던져졌는데, 우리는 그들의 몸뚱어리가 구덩이나 물에 떨어지기 전에 사격, 말 그대로 공중에서 갈가리 찢어버렸소.” 1941년 10월의 둘째 그리고 셋째 날, 독일인들은 (우크라이나 보조 경찰 인력의 도움을 받아) 모길료프의 남성, 여성, 아이 2273명을 사살했다. 그달 19일 또 다른 3726명이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독일 경찰들은 유대인 경찰들에게 특정 시간까지 주어진 장소에 유대인들을 끌어모으라고 지시했다. 먼저, 유대인들을 꾀어내기 위해 흔히 해당 장소로 나오면 음식을 내준다거나 좀더 유리한 “동부” 노동 인력으로 배정되었다는 등의 거짓 약속들이 주어진다. 그러고는 끌어모으기 작업이 진행되는 며칠 동안, 독일인 및 유대인 경찰들은 특정 구역 혹은 가옥들을 봉쇄하고 강제력을 동원해 해당 구역에 있는 사람들을 집합지로 몰아간다. 어린아이, 임신부, 장애인, 나이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았다. 베우제츠 수용소에 이동한 그들은 먼저 살균 소독을 위해 어떤 건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살균 소독 후 돌려줄 테니 입고 있던 옷가지와 귀중품을 내놓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다음이자 마지막 단계에서, 그들은 발가벗은 채 이내 엔진 배기가스(일산화탄소가 들어 있는)로 가득 차게 될 정체불명의 방으로 들어간다. 베우제츠에 내린 유대인들 중 겨우 2~3명만이 목숨을 건졌고, 나머지 약 43만4508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스탈린은 소비에트 공산주의 하에 집단화 정책으로 특히 우크라이나에 기근을 불러와 대참사를 일으켰으며 부농 및 소수 민족을 대량 학살하는 일을 저질렀고 히틀러는 유대인을 절멸하는 것으로 나치 숭배와 전쟁 승리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나치와 소련을 비인간화하여 몰아 그들을 가해자로 규정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너무 단순하고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이 말에 동의했다. 

 

범죄자를 단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따라서 그의 존재가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는 편리하다. 경제의 중요성과 정치의 복잡성을 무시해버리고, 그런 요인들이 사실상 역사의 죄인들이자 나중에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할 자들과 매한가지라고 치부해버리면 더 편안할 수 있다. 더 유혹적이 될 만한 것은, 적어도 오늘날 서구인들에게는, 희생자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들이 블러드랜드의 범죄자와 방관자들이 대면해야 했던 역사적 배경과 같은 배경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희생자와 자기 자신의 동일시는 스스로는 범죄자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들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기억을 지우는 일에 방조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해자의 행위에 집중하여 사건의 실체를 돌아보지 못하고 정작 버려지거나 지워진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죽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숫자가 아닌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죽은 사람들은 기억된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기억할 힘이 있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판단한다. 나중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들의 죽음의 이유를 정한다. 의미가 살육 행위에서 나온다면, 문제는 더 많은 살육은 더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각각의 사망 기록은 하나의 독특한 삶에 대해 그 존재를 제시하지만, 내용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 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대규모 학살에 심층 조사를 실시한 경우는 홀로코스트로, 570만 명의 유대인이 죽었고 그 가운데 540만 명이 독일의 손에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숫자도, 다른 숫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만 추상적인 ‘570만’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하나의 570만 배’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은 뭐랄까, 한 사람의 유대인이 570만 번 죽었다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 기억될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