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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북한이 온다

category 리뷰/책 2023. 9. 12. 14:13
그동안 북한은 미국과의 오랜 적대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국제전략의 핵심 목표로 잡았다. 곡절과 부침이 있었지만, 2019년까지는 이러한 기대와 목표를 접지 않았다. 북한이 핵개발을 지렛대 삼아 대미 관계 정상화를 노렸다면 미국은 북핵을 명분으로 '한반도의 현상'을 유지·강화하고자 했다. 미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현상이란 정전체제와 한미동맹, 남북·북미·북일 간의 긴장관계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실패와 6월 30일 이루어진 남북미의 소득 없는 정상회동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대한 미련을 접고 핵무력을 국가의 중심 정책으로 삼게 되었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김정은과 트럼프 간에 주고받은 27통의 친서가 2022년 9월 25일 한미클럽(전·현직 주미 특파원 모임)을 통해 전문이 공개되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정책 변화에 대한 기조를 엿볼 수 있다.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 합의와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의 결과로 종전선언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안보 관료들은 종전선언 이전 북핵문제에 진전을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협정은 비핵화의 최종 단계에서 체결한다는 구상이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라 말했지만 김정은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18년 6월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를 기대했으나 한미 연합훈련 실시 방침이 발표되자 김정은은 8월 5일 트럼프에게 다음과 같은 친서를 보낸다.
"나는 도발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미 실무회담에 앞서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 이 훈련은 누구를 겨냥한 것이냐. 나는 미군이 이러한 남한의 편집광적이고 매우 과민한 행동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미국과 골칫거리로 인식하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핵문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미국과 남한의 군사적 행동들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이전과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 P45~46
 
2019년 6월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깜짝 정상회동에서 트럼프는 8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약속하고 김정은은 북미 실무회담에 응하겠다고 화답했다. 트럼프는 7월 3일자 친서에서 김정은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미사일 엔진 시험장에 기술 전문가들의 방문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9월 6일에 보낸 답장에서 김정은은 "핵무기 연구소의 전면 가동 중단과 핵물질 생산시설의 불가역적인 폐쇄"를 제안하며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줄 우리 주변 환경의 변화를, 약간만이라도 느낄 필요가 있다"는 단서를 달 정도로 한 발 이상 대화에 진전된 행보를 보여줬다. 그러나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제재 해결'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문재인 정부의 중재는 통하지 않았다.  이후 2019년 10월 열린 실무회담은 미국의 대북 제재의 변화 없음으로 성과 없이 끝났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의 남북관계 악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좌초가 단계적 군축 합의,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음에도 3축 체계를 비롯한 군사력과 한미연합훈련의 강화 정책을 이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북한=경제난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팩트가 아니다. 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할 정도로 예전의 고난의 행군 때문만큼은 아니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2023년 5월 직접 만나본 중국의 관계자들은 '북한이 식량난을 해결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식량 사정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북한을 지원의 대상으로 본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을 돕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거부하거나 응답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중단된 대북 지원을 또다시 중단하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이런 괴리가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에만 매달린다'는 인식을 부추기며 새로운 대북정책 수립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내가 볼 때 가장 문제는 국내 언론과 정부의 과도한 북핵 공격 조장 행위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앞세워 우려하는 적화통일에 나설까. 이는 북한에도 자충수일 뿐더러 국내에도 과도한 군사력 강화 태세, 정쟁을 키우기만 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이 결핍감에 시달리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과도하게 억제하려고 할수록 정작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억제가 힘들어진다는 역설을 이해해야 한다. 한미, 혹은 한미일이 대북 억제 강화를 이유로 군사력과 준비태세를 강화할수록 북한도 마찬가지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확장억제와 한미일의 군사적 결속은 북한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을 겨냥한 군사적 조치로 간주하며 맞대응에 나서서 한중·한러 관계에 큰 부담과 위험을 야기한다. 한국이 이미 충분히 강력한 미국의 확장억제를 더 강화해달라고 매달릴수록 미국은 한국에 부담금 청구를 들이밀 것이므로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이 부분이 나는 꽤나 중요하다 생각한다).
 
1954년부터 유럽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한 미국은 1966년에 나토 회원국들과 '핵공유 협정'을 체결하면서 평시에는 접수국 기지에 배치된 핵무기를 미군이 관리·보호하다가 유사시 접수국의 전투기에도 탑재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프랑스를 제외한 나토 회원국은 '핵기획 그룹'에 참여해 나토의 핵 정책 발전과 실행에 관여했다. 
미국은 한국에 1950년대 후반부터 핵무기를 배치했고, 1970년대 초반에는 그 수가 1000개에 육박했음에도 한국과 핵공유를 하지 않은 것은 1953년 정전협정의 '신무기 반입 금지' 조항을 의식해서다.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핵공유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정전협정 위반인 것이다. 동시에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주한미군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 했기 때문에 한국과 협의도 없이 몰래 핵무기를 배치했다. 한미가 '나토식 핵공유'를 추진할 수 없을까 생각하지만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때문에 불가능하다. NPT에 따르면 핵보유국은 핵무기를 직간접적으로 양도하지 않고 양도받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나토는 핵공유 협정을 1966년 체결하여 1970년 NPT 조약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고 동맹의 핵보유국들이 그들의 핵무기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핵무기 통제 이전을 금지한 NPT 조항에도 부합한다 보았다. 
2023년 4월 한미 간 체결된 워싱턴 선언은 한국이 NPT와 한미원자력협정을 준수한다는 내용을 통해 독자적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더불어 그 어떤 핵공유는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에 반해 일본은 핵공유 논의는 불필요하다고 선을 그으면서 미국과의 반도체 합작에 나섰다. 
북한은 2013년 핵독트린에서 '적대적인 다른 핵보유국이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거나 공격하는 경우 그를 격퇴하고 보복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었다. 그러나 2022년 핵독트린에서는 '핵무기 사용 결정권을 김정은에게 독점 부여하면서도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 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사용조건을 명시했다. '공격하는 경우 ->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한발 더 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안정성이 결여된 억제 관계는 무력충돌의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며 '한반도형 3C'를 제안한다. (한미동맹과 북한이 군비경쟁보다는) 군비통제를 통해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접근, (보복 위협이 빈말이 아님을 상대에게 각인시키는 적대적 신뢰보다는) 서로가 선제공격하지 않고 우발적 충돌 발생 시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우호적 신뢰 구축의 노력, (두려움 주기식의 전달을 지양하고) 상호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는 대화와 소통 방식의 마련 이다.
더불어 최대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최소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라는 저자의 말에 가장 공감했다. 지금까지 남북 대화를 포함한 각종 회담의 목표는 '최선의 시나리오'에 맞춰져 왔다. 많은 것을 얻으려다 보니 어느 하나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우선은 대화와 협상의 목표를 '최악의 시나리오'를 방지하는 데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최소한 전쟁을 방지하고 긴장 완화를 가능하게 하는 접근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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