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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빌레뜨 2

category 리뷰/책 2022. 11. 1. 17:44

가끔씩은 삶이라는 계좌를 마주하고 솔직하게 셈을 해보는 것이 좋다. 항목들을 계산하면서 자신을 속이고 불행 항목에 행복이라고 써넣는다면 그는 불쌍한 사기꾼이다. 고뇌를 고뇌라고 부르고, 절망을 절망이라고 부르라. 단호하게 힘주어 굵은 필치로 둘 다 써넣으라. 그러면 ‘운명‘에게 진 빚을 갚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다. 거짓으로 적어보라. ‘고통‘이라고 써야할 곳에 ‘특권’이라고 써보라. 그런다고 완강한 채권자가 사기를 눈감아주거나 당신이 내미는 가짜 동전을 받겠는가? 가장 강한 천사, 즉 가장 사악한 천사가 피를 요구하는데 물을 줘보라. 그가 순순히 받겠는가? 한 방울의 붉은 피 대신 창백한 바다 전체를 주어도 받지 않을 것이다. - P179

1권의 마지막에서 존의 편지를 기다리는 루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기다려본 일이  있는가. 편지를 쓸 때의 설레임, 두근거림. 편지를 보낼 때의 벅참. 그런 감정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았다면 루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와 이성의 양 극단에서 그는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이성을 선택한다. 그는 사랑보다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존은 이후 폴리나와 이어진다. 존이 원했고 결국 선택한 여성상은 전형적인 모성애, 여자다움을 갖춘 이상향이다. 루시는 애당초 그런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루시는 폴리나를 선택하는 존, 존에게 선택당한 폴리나를 교차해서 보여주며 자신의 내면이 혼란스럽다고 끊임없이 내뱉는다. 질투의 감정이 크겠지만 단언해서 질투만 존재한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복잡함이었다.

(이 괄호 속에서 단언하건대, ‘연심‘이 아닐까 하는 모든 의심을 극히 경멸하고 부인하겠다. 처음부터 그리고 교유하는 내내 그런 착각이 치명적으로 어리석은 짓이라는 확신이 드는 경우, 여자들은 그런 ‘연심‘을 품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거친 물결 위로 떠오르는 ‘희망‘의 별을 본 적이 없거나 꿈꾼 적도 없으면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나와 ‘감정‘은 편지에 깊은 존경심과 끝없는 관심으로 찬 호감을 표현하려고 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고통을 모조리 내가 대신 감당해주고 싶다는 애정, 언제나 몹시 염려가 되는 상대방을 폭풍과 번개로부터 막아주려는 마음을 표현했다. 바로 그 순간, 마음의 문이 흔들리더니 빗장과 자물쇠가 열리고 앙심에 찬 ‘이성‘이 힘차게 뛰어들어와, 그 종이들을 모두 낚아채서 읽은 다음 비웃고 지우고 찢어버렸다. 그리고 ‘이성‘은 다시 한페이지밖에 안되는 간결하고 짧은 편지를 써서 접어 봉한 뒤 주소를 써서 부쳤다. ‘이성‘이 옳았다. - P9

지네브라 팬쇼는 어리고 젊은 걸 무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육체는 아름답고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안다.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충분한 그런 남자를 택함으로써 결혼에 투자한다. 루시는 자유분방하고 감정에 솔직한 팬쇼를 좋아했으면서도 그의 결혼 선택은 비판적으로 본다. 여기서도 감정과 이성의 갈등이 있었겠지만 이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이겼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열망과 남성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충동의 갈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뽈 선생과의 관계다. 뽈 선생은 전형적으로 여성을 가부장제 하에서 바라본다. 여성은 감성적이어서는 안되며 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등 전형적인 성모마리아상을 바라고 있다. 둘을 가로막는 장벽은 이렇게 성차별적 성향이다. 
또 둘은 종교도 다르다. 기독교 구교인 뽈 선생과 신교인 루시. 결혼을 해보니 종교가 서로 다르면 유지하기 어렵다라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는 이 갈등이 잘 무마되는 듯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에 의하면 "지적인 여성"은 일종의 "기형"으로, 불운한 우연이며 창조에서 차지할 위상이나 효용성이 없고 아내로나 노동자로나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여성의 최고 덕목이라고 여겼다. 사랑스럽고 온화하고 수동적이고 평범한 여성이야말로 남성다운 사고와 분별로 골치가 아플 때 쉴 수 있는 유일한 베개라고 마음 깊이 믿었다. 그리고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남성의 정신만이 훌륭하고 실용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소? 이 "그렇지 않소?"는 내게서 반박이나 반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저하고는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는 문제네요"라고만 말하고 곧바로 "가도 되나요, 선생님?" 하고 물었다. - P168~169

나는 그에게 우리 종교에선 신과 인간 사이에 격식이 없으며, 적당한 예식을 위해 필요한 예배 속에는 오직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본성만이 담겨 있다고 했다. '무한' 속에 거하시고 존재 자체가 '영원'이신 '그분'을 향해 고양된 내밀한 비전을 가지는데 집중해야 하는 그런 순간, 그런 상황에서 꽃이나 금박, 양초나 장식물이나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죄와 슬픔, 지상의 부패, 도덕적 타락, 지상에서의 비애를 생각하는 와중에, 찬송하는 신부나 입 다문 군인의 화려한 모습에 끌릴 순 없다고 했다. 존재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밀려올 때,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과 끝없는 의심이 눈앞에 떠오를 때, 그럴 때면 과학적인 논리나 사어가 된 박식한 라틴어로 된 기도는 "하느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울며 갈구하는 마음을 방해하고 괴롭힐 뿐이라고 했다. - P276~277

<빌레뜨>의 가장 큰 재미는 인물들의 성격을 상황을 통해 엿보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주인공인 루시는 자신을 스스로 설명하기 보다는 다른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설명하려한다. 나는 특히 이 지점이 좋았다. 
누구든 자신을 스스로가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부로부터, 비교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성격은 단편적이지 않고 A가 바라보는 나, B가 바라보는 나, C가 바라보는 나는 모두 다른 것처럼.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때때로 얼마나 상반된 특징들이 우리에게 부여되는가! 베끄 부인은 나를 박식하고 우울한 여자로, 팬쇼 양은 신랄하고 빈정대기 좋아하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홈 씨는 모범적인 선생에다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 즉 다소 관습적이고 엄격하고 편협하며 까다롭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정교사다운 정확성을 지닌 산 표본으로 평가했다. 반면에 다른 사람, 즉 뽈 에마뉘엘 같은 사람은 알다시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성격이 불같고 무모하며, 모험심이 강하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대담하다고 암시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웃음을 지었다. - P84~85

나는 둘러대거나 변명을 늘어놓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일시적인 현실 도피나 모든 것을 추월해 빠르게 달려오는 무서운 '사실'을 피해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사실'이라는 유일한 군주에게 복종하지 않으려고 유약하게 보류하거나 정복욕에 차 전진하는 '힘'앞에 얼버무리고 떨면서 저항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나는 '진실'을 배반하는 반역자와는 거리가 멀다. - P349


<제인에어>와 <빌레뜨> 두 작품을 비교하며 나는 어느 것이 더 완성형에 가까운가 생각했다. 공통점부터 찾아보자면 둘 다 대화가 적고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내겐 읽기가 편했다(나는 설명하는 문장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둘 다 그림처럼 문장이 아름답다. 비유도 탁월하고 재치가 돋보이는 문장들이 많다. 여성을 구속하는 가부장제, 종교에 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 내가 보기에 <제인에어>는 좀 더 쉽고 대중적인 문장으로 쓰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 비해 <빌레뜨>는 성경 속 인물이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많아 더 난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제인에어>가 대표작이 된 것에는 대중적 표현에 따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완성형 작품으로는 어떤 것이 가치 있을까. 대부분의 독자가 <제인에어>에 손을 들 것이라 느꼈다. 주인공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간에 따라 심지가 더 단단해지는 등 성장 서사를 통해 완성형에 가까운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전히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 면에서 따진다면 나는 <빌레뜨>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 불완전성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고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적 흔들림을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소설적 재미를 위해서 스포를 최대한 자제했다. 결론도 기대처럼 평범하지 않았어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주관적인 감상기이니 직접 읽어보고 각자 판단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인생의 어떤 부분들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시점, 어떤 위기, 어떤 감정, 즉 기쁨이나 슬픔이나 놀라움 등은 돌이켜보면 마구 빙빙 도는 바퀴처럼 희미한 물체,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물체처럼 떠오를 뿐이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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