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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장/구운몽

category 리뷰/책 2022. 6. 7. 10:17
분명 예전에 읽었으니 가지고 있던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에 둔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새로 구입한 책이다. 이전에는 같은 출판사이지만 최인훈 전집으로 나온 판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판본이었다.
 
어쨌든 광장은 재독이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손꼽히는 광장. 1960년 11월에 발표된 소설이다.
출간 당시가 전쟁이 끝난 지 6~7년, 4.19 혁명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북한은 갈라진 상태에서 전쟁으로 막심한 피해를 겪었고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을 때였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는 비동맹 선언, 중립주의 등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이명준의 선택은 당시 사람들의 상황과 선택지 중 하나를 예상케 한다.
 
명준이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가지 않겠다면서 중립국을 선택하는 모습은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남한과 북한 사회의 모습들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모습에서 명준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 있도록 한다.
 
구운몽은 처음 읽게 되는 것이었다. 
(근데 이전에도 같이 실려 있었을텐데 왜 나는 구운몽을 함께 읽지 않았을까.)
우선 읽기 전 왜 하필 구운몽이 광장과 나란히 한 책에 묶였을까 궁금했다.
어떤 배경도 접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전달받고 감정을 겪자 생각하여 곧바로 읽게 되었다.
 
완독 후 첫 감정은 혼란과 어지러움이었다.
독고민이 몇 차례의 꿈을 꾸고 환각을 경험하던 것처럼 나도 마치 악몽을 꾸었다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비슷한 악몽을 꾸는 과정을 여러 번 겪듯 메스꺼움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구운몽을 이끌고 가는 인물은 독고민 뿐 아니라 김용길, 시사회 해설자 등 다양하다. 이 때문에 장면의 전환이 빨라서 혼란스러움이 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구운몽은 1962년 4월에 발표된 소설로 5.16 군사 쿠데타의 상황을 그렸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혁명군 방송에서는 혁명이 위기에 빠졌다며 시민군이 일어서기를 반복적으로 종용하고 자유를 부르짖는다.
 
독고민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반복되는 내면의 상황들이 독고민의 마지막을 짐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광장>의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광장이라면 <구운몽>의 광장은 썰렁하고 시멘트 바닥의 느낌처럼 차갑고 얼어 붙어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광장과 구운몽은 형식이 달라서 새롭게 느껴졌다.
<광장>은 명준이 선택하는 외부 상황에 대한 묘사에 집중하는 모습이라면 <구운몽>은 철저히 인물에 대한 내면에 치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한 권의 책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 두 개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두 소설을 한 권에 담은 더 큰 이유는 역사적인 이유가 아닐까 한다.
4.19 이후 독재에서 벗어나 이제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5.16 으로 그것이 송두리채 무너지게 되니 말이다.

 

남한 시절의 그에게는 철학이 모든 것이었다. 부모도 없고 돈도 없고 명예도 없는 청년에게, 철학이란 모든 것을 갚고도 남을 꿈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것이었으리라. 또는 양반과 종놀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세월살아온 고장에서, 꿈을 이룰 엄두조차 내지 못할 사회에서, 철학이란, 양심의 마지막 숨을 곳이었으리라. 아니면 그 신분이 임금이건 종이건 사람이 산다는 일에 놀라움을 느끼고, 그 뜻을 캐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마음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느 것이든 좋고, 철학이란 그 모든 것을 다 뜻한다. 어쨌든 그는 철학의탑 속에서 사람을 풍경처럼 바라보았다. - P106
인류는 슬프다. 역사가 뒤집어씌우는 핸디캡. 굵직한 사람들은 인민을 들러리로 잠깐 세워주고는 달콤하고 씩씩한 주역을 차지한 계면쩍음을 감추려 한다. 대중은 오래 흥분하지 못한다. 그의 감격은 그때뿐이다. 평생 가는 감정의 지속은 한 사람 몫의 장에서만 이루어진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 - P158
에덴 동산에서의 잘못에서 법왕제에 이르는 기독교의 걸음걸이는, 그대로 코뮤니즘의 낳음과 자람의 걸음에 신기스럽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들은 쌍둥이 그림이었다. - P184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사람은, 모르는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성격까지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성격을 골라잡다니! 모든 일이 잘될터이었다. 다만한가지만 없었다면.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방금 태어난아기를 한 팔로 보듬고 다른 팔로 무덤을 깨뜨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여자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 - P208
마음이 추우면 죽는다. - P223
더 많은 탐조등 빛이 도시의 하늘에서 갈팡질팡 엇갈리고 있다. 폭격, 혁명, 누가 혁명을 일으킨 것일까. 스피커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거리고 나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개 한 마리 얼씬 않는 거리는 사방이 괴괴할 뿐, 총소리 한 방 들리지 않는다. - P249
불사조처럼 날아오르는 그대의 양심을. 그대의 사랑을. 양심과 사랑에 거듭나서, 심연의 그 아득한 거리에 승리하고, 저 높은 자유를 향하여 날아오르는 그대의 앞날을 봅니다. 이 도끼를 받으십시오. (총성. 또 총성. 뒤따라 기관총이 이어쏴) 안녕히. 연인이여. 그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자유 만세. 공화국 만세. - P278
현대는 성공의 시대가 아니라 좌절의 시대며, 건너는 시대가 아니라 가라앉는 때며, 한마디로 난파의 계절이므로, 다음에 현대인의 인격적 상황은 극심한 자기 분열이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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