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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18 푸른 눈의 증인

category 리뷰/책 2022. 5. 19. 09:33

차별과 배제, 편견은 사건을 감추고 왜곡하며 원하는 그림으로 조장한다.

1980년 광주는 20대 이전까지만 해도 내게 희미한 존재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TV와 언론에 비춰진 당시의 광주는 폭도들의 봉기가 일어난 위험한 도시였다.
 
이 책은 5.18 40주년이 되던 2020년 5월 1일 발간되었다.
작가인 폴 코트라이트는 당시 평화봉사단으로 파견되어 있는 상태에서 광주 상황을 목격하였다.
(그는 당시 광주에서 30여분 정도 떨어진 나주의 한센병 환자 정착촌인 호혜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이전에는 나주 보건소에서 1년 반을 일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독일 외신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는 현장 사진과 보도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외국인이 쓴  회고록은 이 책이 최초라고 볼 수 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일종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행위이며 사건에 대한 솔직한 나의 목소리가 더해질 것이다. 문제는 당시 내가 목격했던 사건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건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 그 역사를 내가 어떻게 전부 증언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것만을 말하는 것이다. - P14
 
그는 5월 14일 비무장지대와 가까운 강원도에서 평화봉사단 건강 교육을 마치고 서울로 온다.
평상시와 달리 평화봉사단 건물 근처 도로를 학생들이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한국에 온 후 나는 단 한번도 위험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국은 사실상 강력범죄가 없는 나라였다.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장면도 안전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 P17
 
제3자의 눈에서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외부인이지만 그는 당시 한국에 들어온 지 2년 정도가 지났기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다만 외부인이기에 한국의 내부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0.26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신군부가 들어섰기에 국민에 대한 감시와 압제는 여전했으나 외국인이었기에 서울 시위를 보고도 위협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광주 현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당부 때문이었다.
알려진 바대로 당시의 광주는 철저히 외부에서 고립되었고 방송과 언론에서는 전두환 정권에 구미에 맞는 보도만 내보내고 있었다.
광주는 외부와의 연락선도 끊겼기에 지인이 있다고 해도 연락하기 어려웠고 내부의 사정을 알기에 어려웠다.
 
"미국인인가요?"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봤지요?"
"지금 당신은 우리를 대변해주어야 해요."
"한국 사람들은 지금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없어요. 미국인인 당신이 증인이 되어 우리를 대신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알려 주세요."
내가 목격한 이 사태가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나는 이미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답은 더듬거렸고 나는 이 소극적인 대답을 속으로 자책했다. - P70
 
할머니는 광주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달라며 애원하였다.
 
광주를 떠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왔지만 평화봉사단원들은 위험을 감수한 채 그곳에 남기로 한다.
폴 코트라이트, 팀 원버그, 주디 챔벌린, 데이브 돌린저는 위르겐 한츠페터를 비롯한 외신 기자들에게 광주의 상황을 통역했다.
구타당하는 민간인을 목격하면 보호하고 병원으로 이송시키는 작업을 하는 등 평화봉사단원들은 비폭력적 개입을 통해 미국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현장에는 1980년 타임지 사진 기자로 한국에 왔다가 광주민주항쟁 소식을 듣고 광주로 향한 로빈 모이어도 있었다.
그가 촬영한 광주항쟁 사진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처음 공개되는 사진들이라고 한다.
 
그를 비롯한 평화봉사단원들은 군인이 민간인을 구타하고 살상하는 모습을 똑똑이 지켜보았다.
평화봉사단원은 한국인과 정치적 문제로 토론을 하거나 정치 상황과 관련된 행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그들은 시민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주체였으나 점차 다양한 계층의 범위로 항쟁은 확대되었다.
 
여기 작은 도로에서 그 요구와 분노는 학생들을 넘어서 놀랍게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하고 근면한 집단이었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로 확대되고 있었다.
이들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마주치는 군인들을 향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당당히 외치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 P68
 
5월의 봄은 잔혹한 피로 물들었다.
그는 안치된 시신들을 보면서 분노하고 군과 정부가 민간인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모습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충격과 혼돈에 빠진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괴리감이 느껴졌다. 거짓말처럼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마치 영혼들이 이 지역을 접수한 것 같았다. 5월의 태양은 여전히 따뜻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고, 새는 지저귀고, 은행나무이 여린 잎은 바람에 팔랑이고 있었다. 과연 누가 여기에 있었던 이 일을 목격했을까? 육신 없는 영혼들은 이 장면을 증언하지 못할 것이다. - P97
 
그는 다시 호혜원으로 돌아와 마을 지도자를 만났는데 자신에게 온 편지를 발견하고 놀란다.
'보호'대상이 된 그는 군인 한 명이 배치되어 그동안 감시를 당해왔다는 것이다. 마을 지도자는 그의 행적을 군사당국에 보고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졌다.
한달쯤 후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국의 군사정부가 광주에 머물며 외신 기자들의 통역을 맡았던 그들을 추방할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화봉사단 책임자가 사실 증명을 요구하며 완강히 버틴 끝에 그는 다행히 한국에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외국인이었지만 결코 광주 항쟁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미국의 국민이었다.
때문에 이 상황은 그를 내내 괴롭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할머니와 했던 약속을 뒤늦게 이렇게라도 지키는 것은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1980년의 미국은 한국과 한국인을 실망시켰다. 나는 이 책을 쓴 미국인으로서 미국인과 한국인이 우리 공동의 역사, 공동의 열망, 나아가 공동의 고통을 서로 더 잘 이해하기를 바란다. - P182
 
평화봉사단원, 외신기자들을 비롯해 광주를 위해 나서준 외국인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제 5.18 기념식이 열렸다.

보수 진영 정당 포함 1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하는데 통합을 강조한 정부가 말 뿐이 아니라 광주 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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