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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숭배 애도 적대

category 리뷰/책 2022. 2. 14. 17:38
숭배 애도 적대
저자 : 천정환
출판 : 서해문집
발매 : 2021.12.20

 

자살이 이 사회의 비참 또는 관계의 한계를 증거한다는 점을 당연히, 여전히 생각한다. 죽음이 아니라면 산 자들은 삶을 근본적으로 성찰해낼 방법이 별로 없는데, 죽음이 만연해 있어 무감해져가는 듯하다. - P6
 
한국은 자살 공화국이란 오명을 몇 년째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자살의 원인은 뿌리 뽑히지 않은 채 계속되고 너무 흔해진 자살이 이제는 모든 이들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이다. 그들이 왜 죽었는지 성찰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죽음은 죽음으로써 끝날 뿐이다.
 
거대한 패배는 역사의 거시적인 변화와 주체의 한계(또는 오류), 대중의 이반 같은 것들과 함께 온다. 또는 그렇게 반추된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에서 그 모든 것은, 패배는, 매우 느닷없이 닥쳐온 것 같았다. 그것이 남긴 의미를 되살려 패배 속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하려 누군가들은 애썼지만 설득력이 없었다. 그것은 확실한, 재앙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패배였다. - P20
 
1987년 거대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노태우 정권의 등장으로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민주화를 되찾기 위한 투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1년 5월까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결국 실패했다. 이 패배는 그 시기를 살아가던 주체들에게 처절한 패배감을 맛보게 했다.
 
20대는 ‘삶/죽음’을 피상적으로만 느낄 뿐 사유하지는 못하는 것 아닐까, 그것은 그들의 삶을 이루는 젊은 몸뚱이와 마음 속 불길 때문이다. 그 사정은 스스로 죽은 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죽음’의 의미를 늙은이의 방법으로 찬찬히 숙고해보지 않은채 죽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의 타나토스(죽음-본능)는 너무 뜨거운 에로스(삶-본능)가 순간 전화한 것이다. - P21
 
젊어 죽은 자들의 삶/죽음 자체를 재구성하고 그 비극을살펴보는 것은 윤리적이고 실존적인 작업이다. 그것은 어쩌면그렇게 젊어 죽은 자 자신도 알지 못하던 삶의 비의(悲意), 우리의 삶과 죽음 전체 또는 삶과 죽음의 변증법에 대한 것이다. 또한 ‘전체로서의 삶‘에 배어 있는 영성과 초월성을 생각해야 하는인간적 의무에 관계된 것이다. 익히 알려져 ‘열사‘라 불리는 이들뿐 아니라 때로 심지어 기타 열사들이라고 불린 그런 범칭(凡稱) 속에 개별의 삶/죽음을 가두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생이 아니어서, 또는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아예이름이 불리지도 못한 죽음들에 대해 말하고 쓴다는 것은 일종의 초혼(招魂)이며 애도다. - P26
 
당시를 산 젊은이들은 철저한 패배로 무력감으로 기억이 멈춘 채 치유되지 못했다. 1991년 5월의 분위기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패배는 제대로 된 애도를 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는 이후 더 이상의 민중 운동이 멈춰서게 된 배경이 되었다.
 
책은 열사 / 애도 정치와 증오 정치 / 잔혹한 사회, 취약한 인간 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는데 역사의 흐름에 따른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열사는 민주화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키워드에 해당한다.
 
나는 무덤가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있는사이버 묘소다. 여기에는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열사·희생자의 이름들과 삶/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수집·망라돼 있다. 대부분 청춘남녀인 그들의 꽃 같은 얼굴 사진도 있다. 이 사이버 무덤은 세계에서 드문, 가장 큰 정치적 공동묘지인지모른다. - P34
 
‘열사‘라는 요절한 사람의 도덕적 헤게모니는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구성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1980-1990년대 운동권의 집단적 심성을 가장 적절히 시화(詩化)하여 표현한키워드였다. 이 같은 집단심리적 과정이 곧 운동을 위한 윤리적동원의 기제로 오래 기능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운동정치 특유의 ‘열사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정성의 레짐과 정치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주장이 맞다. 죽음의 권위와 도덕적 헤게모니가 모두 소실되어 과거의 것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 P39
 
1991년 5월 투쟁은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하면서 시작되었다. 전국적으로 대학생 시위가 급격히 번졌고 이후 분신 또는 투신 자살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강경대의 죽음 이후 학생계, 노동계, 재야계는 1987년 항쟁의 불완전한 성과를 완수하기 위해 뛰어든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홈페이지(https://www.kdemo.or.kr/patriot/name/ㄱ/page/1)에 들어가 정보를 확인해 보면 수없는 이름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거나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다. 추가로 2021년 6월 10일 온라인 민족민주 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관이 열렸다.(http://www.yolsachumo.org)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조직에 속해 있지 않았으면서도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으로 자기 목숨을 버린, 그야말로 ‘독립적이고 자생적인 사회적 죽음‘도 많았다는 것은 반드시 기억할 만하다. 말 그대로 무명(無名)‘인 이런 시민들에 의해 ‘민주화는 가능했을 것이다. - P46
 
우리들은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같은 몇몇 죽음들만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외에도 수많은 열사와 희생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대부분 요절했고 사회적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열사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그것을 직접 목도하거나 (추)체험하는 자들에게 가장 극적인 도덕적 고양을 이루게 할 뿐 아니라, 아예 도덕적인 퇴로를 차단하는 공포와 숭고의 기획이다. - P55
 
숭고함이란 이성적 사유를 넘어서는 감정으로 여러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이 때문에 열사의 죽음은 강렬함을 불러 일으키고 열사의 정치가 한국 운동사회의 정동(情動) 정치의 핵심이 되었다.
 
전태일의 이름과 그 이야기가 계속 호출되고 만들어지는 이유는, 단지 전태일이 박정희 식 축적체제의 피해자이고 여전히 한국 사회가 약자에 대한 착취와 ‘근로기준’을 무시한 노동체제로써 ‘부’를 축적하며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이 비판적으로 말하듯 전태일이 의례화된 ‘열사 정치’의 어떤 시조 같은 존재여서도 아니다. 전태일은 가장 낮은 바닥에서 일어난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저항자이며 실천가였다. 자신보다 더 여리고 힘든 타인을 늘 돕고자 했고, 친구들과 함께 조직을 만들어 국가와 지배에 저항했던 것이다. - P59
 
열사의 정치학의 기원에 전태일이란 이름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한국 사회운동 전체의 상징이 되었고 많은 운동가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실존에 대한 고민, 사회 운동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전태일은 노동 운동의 시작이었고 분신이란 자살 방법을 택함으로써 사회적 효과가 컸으며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강성 노조가 이른바 국민경제와 노사관계에 해악을 끼쳐왔다는 선동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비난은 아마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이어진 노동운동의 비타협성‘에 대한 비난의 맥락 안에 있는 것일 테다. 여기에는 보수언론은 물론 중간층적인 시민사회나 일부 지식인들도 동참해왔다.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파업이 마치 민주노조운동의지표라도 되는 양 ‘투쟁 만능주의‘와 ‘비타협주의‘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며, 나아가 대중성의 상실‘과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로 귀착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 P72
 
노조의 전투성에 대항하여 자본과 권력은 대항할 수 밖에 없었다는 불가피함을 듣곤 한다. 정리해고와 노조 금지는 노동 현장과 노동운동 과정에서 끔찍한 결과를 일으켜 왔는데 이는 한국 기업의 전략이자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과연 정리해고를 막거나 노조를 건설하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대 기업, 자본과 맞설 힘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있을까? 여전히 한국 노조율은 10%밖에 되지 않고 이마저도 대기업과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싸우지 않는다면 이들의 권리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사회학자 김명희가 5.18을 소재로 연구했듯,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죽음은 트라우마로 내장되고 영혼을 찍어 누르는 억압이 되어, 알 수 없는 미래에 죽음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광주항쟁은 모두에게 트라우마적 사건이었으되 오랫동안 매도당하고 억압당했다. 또한 광주의 죽음은 심각하게 모독당했다. - P83
 
광주항쟁이란 사건은 대한민국민 모두에게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사건의 원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정권의 지도자는 사과도 하지 않은채 죽었다. 광주의 죽음은 언제나 매도당했고 왜곡되었으며 철저히 배척당한 세월이 길었다. 1980년대 수많은 싸움이 광주항쟁의 정신을 잇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기 위한 행위지 않았을까. 1980년 5월 광주를 취재한 이창성 기자는 죄책감이 상당히 오래 가 2008년이 되어서야 사진집 《28년 만의 약속》을 냈다고 한다. 군부의 검열에 대한 우려도 있었겠지만 심리적 트라우마가 너무 큰 것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삶. 반성하기 두려운 삶. 반성은 무섭다. 그래서
뻔뻔스럽다. 낯짝 두꺼워지는 소리….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할 자신 없는 자, 부끄러운 삶일 뿐 아니라
죄지음이다.
절망과 무기력.
이 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하게 빼앗김의 방관, 덧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중략) - P87
 
1986년 5월 21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혜정이 한강에 투신했다. 박혜정은 예민하고 섬세했던 것 같다. 수많은 희생자들 앞에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박혜정의 죽음은 기존의 열사들과의 죽음과는 또 다른 1980년대적 죽음의 상징이 되었고 숱한 문학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다. 김연수는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2005) 에서 그녀의 죽음을 모티프로 삼았다.
 
제 길이 2만 학우 한 명 한 명에게 반미의식을 심어주고 정권
타도와 함께 힘썼으면 하는 마음에 과감히 떠납니다. 불감증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 명지대 학우에 슬픔과 연민을 가지다 다시
제자리고 안주해 커피나 콜라를 마시는 2만 학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해방의 코스모스-박승희 열사-추모문집’(2011) - P92
 
너희는 가슴에 불을 품고 싸워야 하리. 적들에 대한 증
오와 불타는 적개심으로 전선의 맨 앞에 나서서 투쟁해야 하리.
그 싸움이 네 혼자만이 아니라 2만 학우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하는, 함께 하는 싸움이어야 하리. 내 항상 너희와 함께하리니 힘
들고 괴롭더라도 나를 생각하며 힘차게 전진하라.
내 서랍에 코스모스씨가 있으니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
주라, 항상 함께하고 싶다. - P94
 
1991년 4월 29일 전남대학교 학생 박승희가 명지대생 강경대 죽은 후 사흘 째 되던 날 교정에서 자기 몸에 시너를 붓고 분신했다. 박승희는 세 통의 유서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남겼다. 자기의 죽음이 각성제가 되어 남은 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공동체에 속한 이들이며 유서를 읽을 모든 이들이 본인의 죽음을 이해하고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동료들에게는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주문으로 투쟁하라 이르고 있다. 코스모스는 박승희의 꽃이 되어 그녀의 추모제 때마다 소환되고 있다.
 
분명 그해 5월의 정념은 ‘죽음’이었으되 ‘그들/우리’ 또한 그 죽음의 사태-짐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서야 그 죽음에 대해 사고하고 성찰하고 애도하게 되었다.
1991년 5월의 죽음들안, 1980년 이래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진 것이며 동시에 한 시대의 종언이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 P107
 
다시 말하지만 1980년 5월에 존재했던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에 많은 트라우마를 겪었다.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고 죽고 다치고 스러지는 일이 비일 비재했다. 이 때문에 이들을 애도하는 것조차 당시에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광주를 아주 오랜 시간이 훌쩍 지나 사회에 나와서나 알게 되었다. 아직 어린 나이여서 무얼 알기에는 어려웠겠지만 완고하고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조용히 학교-집을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했다. 대학교 때도 돈을 벌며 스스로를 돌보느라 사회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30대가 다되어서야 여유가 생기면서 필요에 의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진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참을 지나 보았지만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목격자들과 그것을 전해들은 사람의 충격은 오죽했을까.
 
박혜정의 죄의식이나 박승희의 신념 같은 것은 ‘1980년대의 종언’과 함께 점점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민중주의도, 초월적 도덕도 마찬가지였다. 페터 슬로터다이크나 슬라보예 지젝의 말대로 ‘냉소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생 및 학생운동의 정치문화와 ‘사회’ 사이의 괴리는 더 이상 없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의 대학은 청년의 성소이거나 해방의 상상력이 꽃 피는 공간이 아니라, 가장 속화된, 대기업이나 공무원 입시 준비기관이 되기 시작했다. ‘각자도생’과 ‘무한경쟁’ 외의 다른 가치를 추구할 여지를 주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08
 
이제 더 이상 학생들의 운동권 문화는 없다. 대학까지 무한 경쟁 속에 내몰리고 입학해서도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스펙을 쌓고 취업을 준비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취업 문은 좁아서 N년째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이들에게 어떤 사회적 역할을 강요할 수 있을까. 개인과 사회의 괴리는 더욱 더 커져만 가는 현실이다.
 
이제 2000년대 노동자들의 죽음을 확인해볼 차례이다.
 
노무현 정부하에서 노동관계법은 개악되었으며,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건수도 늘었다. 이는 이른바 "자유시장경제 모델의 조절양식"으로 이행하기 위한 시도가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전개되면서 빚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노동‘에 대한 개별 기업의 자의적 행동과 전횡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방임하거나 노조탄압을 거들었다. 노동자 계급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고용불안과 유연화, 노동조합활동 억압에 저항했으나 강도 높은 탄압을 불러왔다. 그래서 마치 노태우 정권의 공안정국 시기의 대립 양상이 재현됐다. - P113
 
IMF 이후 사회 구조는 너무 많이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게 되었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무언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바뀌지 못했고 오히려 이전 정권처럼 기업과 노동자 간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노무현은 자신의 집권이 곧 ‘민주화의 완성이라 여겼던듯하다. 그는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죽어나가던 바로 그때,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라며 분신한 노동자들을 모욕했다. 심지어 화물연대 노동자의 분신 이후 가혹한노동 현실을 완화하겠다고 한 법무·노동 장관을 오히려 질책하기까지 했다. 한때 노동·인권 변호사였던 그의 이런 인식이 노동 현실의 악화에 크게 일조했다. 이는 노무현 자신을 배반하는것이었으며, 대통령선거 때 그를 지지한 노조와 시민사회를 공격하고 정권의 중요 지지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자해적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는 노동조합 운동과 ‘노동‘이 ‘시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약화되는 데 치명적으로 일조하는 일이었다. - P117
 
박한 평가인 듯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노무현 정권 초기 2003년에서 1년 만에 10여 명의 노동자가 분신하거나 목을 매 죽었다.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은 노조를 노조 이기주의, 노동 귀족론 등으로 책임을 씌웠고 기업은 기존의 폭력의 노조탄압에서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같은 법률을 적용한 노동탄압을 가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는 이전의 노동자들의 죽음과 다른 형태인 것이다.
 
감히 노조와 노동자들은 이윤 실현이라는 지상(至上)의 승고하고 신성한 ‘영업‘을 방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파업은 마치 패륜과 같은 짓이며, 대한민국 법원과 민법·노동관계법이 ‘불법‘을 자행한 자들에게 적절한 돈을 받아냄으로써손해를 벌충하게 하는 법과 제도가 완비돼 있다. 거기다 노조는경찰의 부상이나 보험사의 영업손실에 대한 민사 책임도 져야할지 모른다. 만에 하나 파업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은월급을 압류당하고 평생 빚더미에 올라앉게 될 가능성이 있다. 노사 합의나 사회적 합의로 파업이나 해고 문제를 해결했다 해도 민사상의 청구는 별도의 문제로 간주될 수 있다. - P129
 
기업과 노동부 경찰 검찰 법원은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 이들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결국 이익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노동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2000년대 방식의 죽음은 새로운 노동 현실 속에서 생겨난 것이고 영업의 자유 앞에서 그들은 일개 개인일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애도 정치와 증오 정치는 2000년대 이후 지금의 한국 정치의 기원을 엿볼 수 있게 하는 키워드에 해당한다. 노무현의 죽음부터 공직자들의 자살까지를 다룬다.
 
노무현은 어떤 큰 상징이었고, 노사모‘로 표현되는 대중의 지지 행동은 한국 대중민주주의사에서 새로운 문화이자 계기점임에 분명했다. 그는 한국 정치문화의 많은 것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있는 듯했다.
또 그의 승리는 그 자체로 대단한 변화이자 ‘역사의 진보‘처럼보였다. 당선되던 날 그가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부둥켜안을 때, 모순 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네"로 시작되는 노래를 불렀다던가…. 비주류의 승리, 민주화운동의 승리, 1980년대의 승리처럼 보였다. - P152
 
노무현 대통령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존재였다. 대중들의 지지로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민중이 승리하는 느낌을 받았고 마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더는 후퇴가 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게 했다고나 할까.
 
막스 베버는 유명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란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
이기에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고단언했다. 정치 자체가 폭력이나 악과 관계하는 일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58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정치하지 마라는 글을 남겼다. 정치는 괴롭고 정치인은 고난의 행군을 견뎌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정치를 시작하고 나서 20여년 만에 대통령까지 되었으니 화려한 이력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정치를 한 이후 결과가 허무하고 실패의 기록만 남아 자신을 괴롭혔기에 자조의 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슈미트는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끼친 책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란 결국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적대를 창출하는 행위라 주장했다. ‘적‘의 타자성과 이질성,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우리‘의 동질성과 동지-됨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행위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은 ‘우리‘를 형성하고 존재케 하기 위한작용이다. 칼 슈미트는 그래서 "동지와 적이라는 특수한 대립을다른 구별들로부터 분리시켜 독립적인 것으로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 속에 이미 정치적인 것의 존재로서의 사실성과 독립성이 나타나는 것"이라 했다. - P162
 
두 진영 이외에 동지 아니면 적의 논리로 중간을 허용하지 않고 '빨갱이, 좌빨' '적폐, 토착왜구' 하는 식의 딱지를 붙이는 방식이 여전히 먹혀 드는 정치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슈미트는 자유주의를 비난하였는데 자유주의는 적대와 적의 개념을 부인하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모호하게 만들어 정작 논의해야 할 정치 문제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 같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단지 행정부의 수반이 아니라 정치적 상징이며, 문화정치의 핵심이다. 대통령은 그 자체로서 통치성의 중대한 구성요소이며 가부장-국가의 중심 기표다. - P164
 
이에 더하여 유교 전통을 가진 한국에서 대통령은 ‘주군‘
이나 ‘임금‘ 같은 봉건 군주의 표상으로 재현되고 또 실제로 그와 유사한 존재로 여겨진다. 흥미롭게도 이런 표상은 권위주의시대(1960-1980년대)와 김영삼·김대중 양 김의 보스정치 시대를지나며 오히려 더 강화된 면이 있다. - P166
 
대통령제는 제왕적 정치체제로 존재하기에 이전의 황제, 국왕 체제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국회와 행정 수반들이 있지만 대통령이란 중심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몇년 전부터 5년 대통령 단임제에 대해서 벗어나 4년 대통령 중임제 or 의원 내각제 등으로 정치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5년 단임제로는 정부의 정책이 동력을 진행해 나가기에 한계가 많고 대통령 자체에 중심이 너무 쏠려 있는 것도 문제이며 행정부가 지나치게 비대하다.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노출된 바 진지하게 현 체제를 변경할 것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래 죽음 뒤의 뒤늦은 상실감과 고인에 대한 재발견은 모든 애도 과정의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타자의 죽음에 대한 나-주체‘의 대응으로서, 대개 인륜성과 ’선‘이 작용한다. - P170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고 나는 전라남도 어딘가에서 모임을 갖고 있었다. 약간은 무더웠던 날, 충격적인 비보는 모임의 분위기를 모두 바꾸어버릴 만큼 셌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무거움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어떤 죽음이었든 죽은 자에 대해서는 애도감을 갖게 마련이지만 한 나라의 수반이 이렇게 갑작스런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 같다. 전국적으로 많은 분향소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안함이란 단어가 분향소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와 그 가족이 뇌물과 비리에 연루되어서가아니라 ‘정치보복‘에 의한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또한 그죽음은 노무현이 정권의 실패와 부패 혐의라는 불명예를 다 씻어버리고 그들의 마음에 완연히, 그리고 강하게, 친근하고 선하며 더 없이 훌륭한 ‘노짱‘과 ‘국민 대통령‘의 자리에 다시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폐족‘이었던 ‘친노‘는 정치적으로 부활하고 다시 뭉쳐 재기했다. 여기서 그들의 죄책감과 원한감정 (복수심)이 매개가 되었다. 장례 기간 동안 그 집합적 정동은 이미 응결되었다. - P173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해석과 함께 이후에도 쏟아진 보도는 대립 정치의 시작이었다. 주변 이들이 끊임없이 소환되고 재판에 불려갔지만 노무현 정부의 핵심인 친노 세력은 그가 죽으면서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죽음으로 인해 노무현은 비극 영웅의 면모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의 과도한 죄의식과 일방적인 긍정적 평가에 보통의 사람들은 공감하기 쉽지 않다. ‘친노‘ 정치세력은 노무현(의죽음)에 대한 죄의식, 이명박·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분노·증오따위의 감정을 노무현 우상화를 통해 역(逆)승화하려 하거나, 현실정치에서의 ‘세력‘으로 운용해왔다. - P187
 
노무현 죽음 이후 한국 정치는 감정의 과잉으로 양 극단을 달리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퇴임 이후 정치에서 멀어지고 싶었지만 죽음으로써 정치에 끊임없이 이용되고 소환되는 아이러니가 발생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적폐 청산‘과 검찰 등의 권력기관 개혁을 제1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일면 그것은 촛불항쟁의 명령을 이행하는 듯했으나 진정한 사회개혁과 연결되지 못했다. 칼끝은 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사 몇몇으로만향했을 뿐이었다. 일련의 ‘내로남불‘은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한계가 많으며 ‘적폐‘ 세력과 결정적인 차이가 없는지를 반복해서보여주었다. - P190
 
약속했던 개혁의 실패와 함께 오히려 다시 스스로 증오의 정치와 진영 논리(감정)의 악순환의 굴로 들어갔다.
이 감정의 ‘악무한(惡無限)‘은 한편으론 극렬 지지자들을방패로 삼고, 다른 한편으론 ‘민주 대 반민주‘라든가 ‘친일 대 극일‘이라는 포장에 기댄다. 착각과 달리 진영정치는 ‘진보‘나 ‘보수의 이념에 제대로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장으로 한감정정치이며 비뚤어진 도덕정치다. 그것은 다른 진영에 속한자들과 그들의 당파가 가진 합리성과 공동체에 대한 진정성을인식 자체에서 배제하려 한다. (중략) 이 악무한은 진보적 제3지대나 중도, 그리고 ‘정책정당‘의 여지도 없애왔다. 양당 정치의 비루함과 악무한에 지친 사람은 너무나 많으나 대안은 아직 왜소하다. - P196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호기롭게 등장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노무현 정부처럼 약속했던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고 정치는 진영 논리에 갇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중도 지대는 갈 길을 잃었고 진보 정치도 실종했다. 대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차기 정부이 어떤 모습이 될 지 짐작할 수 없지만 어떤 모습이든 나아갈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한국 정치의 미래는 여전히 어두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고위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 등 이른바 '사회 고위층', 즉 지배계급에 속하는 중장년 남성이 자살하는 일이 잦아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여러 가지 이유와 맥락이 있다. 그들 한때 인생의 '승리자'들은 독직 부패 비리 성범죄 등에 연루되거나 '의혹'을 받는 수사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거나 누군가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혹은 스스로의 고통과 죄의식, 수치, 모욕감 때문에 목숨을 버렸다. - P201
 
권력투쟁, 관료 조직, 부패 문제, 남성중심주의 등은 한국 사회 고위 공직자들의 자살과 관련한 키워드이다. 자살자의 대부분은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본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선택된 것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4년 7월까지 검찰 조사 중 자살한 사람은 83명에 이른다.
 
수사 과정에서 신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압박을 받은 피해자가 자살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검찰의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여러 번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그 관행은 현재까지도 바뀌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노회찬의 죽음을 알리는 "속보"가 나온 직후부터 나는 종일 분노와 슬픔과 상실과 허탈 등이 온통 뒤엉킨 SNS 타임라인을 보았다. 죽음의 진상이나 정황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애도하고 오래 기억할 것' 운운하는 글들도 있었다. 언어를 초과하는 사건을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인, 그러나 대개 상투적이고도 공소한 언어와, 와중에도 '주목경쟁'하는 '자아'들을 보는 것은 사건 자체만큼이나 힘겨웠다. - P215
 
노회찬의 죽음은 진보정당 운동뿐 아니라, 기만적이며 비속한 양당 진영정치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한국 정치 전체에 큰 손실이었다. - P219
 
당시 SNS 및 언론에서는 한동안 노회찬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와 넘쳐나는 감정들로 정신이 없었다. 나의 경우 노회찬의 죽음 당시에는 많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가 시간이 지나서 허무함과 약간의 분노가 밀려왔다. 그가 죽기 전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윤미향씨를 비롯하여 정의당의 몇 가지 사건들로 머리가 어지러웠던 기억이 난다. 진보의 가치는 추락하고 그의 죽음으로 진보의 구심점은 사라졌다. 소수자를 위한 산재한 일들이 있었는데 이후 더 이상의 동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 같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민간인 사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국정원 댓글 공작 등과 관련해서 일어난 국정원 직원들의 "잇따른 번개탄 자살시도의 원인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조직적인 증거 자료 조작과, 국정원 지휘부의 꼬리 자르기식 지침 등으로 일관하는 태도"라 생각할 수 있다. - P227
 
박근혜는 국정원 댓글 논란으로 정부 등장부터 말이 많았다. 소름끼치는 것은 이 모든 게 대부분 사실이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윗선의 핵심 멤버들은 법망을 모조리 빠져 나가고 말단 직원들은 노출이 되어 있으니 희생양이 되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젊은 그들이 목숨까지 버려 '조직'이 지켜졌을까? 국정원 간부는 일개 공무원이거나 정권의 한 때 잘나가는 하수인일 뿐이다. 국정원이 곧 국가도 아니며, 국정원을 지키는 일이 곧 애국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중년의 남성 직장인 공무원들 중에는 '조직'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고 '조직'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직장' 개념이 존재하고 권위주의가 사회를 지배할 때 만들어진 인간형이거나, 특수한 직장을 다닌다는 자부심을 스스로 내면화함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직장에는 흔히 직업적 전문적인 기능적 인간관계 외에 '상명하복'과 '형님 아우'하는 식의 남성 규율이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 P228
 
조직을 위해 충성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군대식 상명하복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의 기원은 언제인가. 결국 멀리 흘러가면 일제 시기까지 올라가지 않을까. 권위주의에 의한 명령 복종 형태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자살행동'이란 몇 단계의 심리적 계단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 계단들 하나하나가 다 가파르다. - P231
 
자살이라는 행동이 나타나기 전까지 여러 징후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징후가 나타났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다거나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을 것 같다. 몇 단계를 거쳐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나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면 좋겠다.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자살은 특히 한국 정치를 둘러싼 어둡고 지저분한 문제들, 정쟁과 권력투쟁, 조직의 이해, 부패 문제 등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와중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권력정치라는 괴물의 희생양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온 제도화된 권력이 있으니, 바로 제도언론과 검찰이다. -P246
 
2000년대 이후 우리는 특히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자살을 많이 보아왔다. 박근혜 청와대 시절에도 최경락 경위의 죽음이 있었다. 청와대가 문제상황을 제공했고 검찰은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원인을 제공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유서에는 언론에 대한 언급이 조금 있는 것 외엔 다른 언급이 거의 없었다. 권력 정치와 조직에 의한 압박으로 인한 희생양은 죽어 사라졌는데 제도화된 권력은 공고하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했을 최경략 경위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혼자 죽는 것은 당장엔 간명한(?) 회피 수단일지 몰라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그것은 부모, 아내, 아들딸 등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영원히 풀지 못할 의혹과 죄책감과 한을 남기는 일이다. 게다가 조직의 비위와 책임에 덤터기를 써서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다. 그의 명예는 보존되지 못한다. 피치 못해 상관의 명령이나 조직의 압력으로 저지른 잘못이나 떳떳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럴수록 더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법적 과정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혹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버티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 P251~252
 
세속의 개별자들이 거의 다 더럽고 약한 면을 가진 만큼 '시민'과 '유권자'들도 거의 저속하고 치졸한 속물이면서도,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과 운동(가)이 깨끗하고 도덕적이기를 원한다. 도덕적일 것에 대한 요청이 아니라면 정치공동체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세상의 약자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도덕은 그 정치(인), 운동(가)의 사생활의 모든 것이나 개별 인격에 관한 차원이 아니라 공적 윤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 P259
 
물론 죽기 전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본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살한 것이라면 그건 절대 안될 일이라 말하겠다. 죽는다고 해서 명예가 지켜지는가? 이 때 필요한 것이야말로 공직자의 책임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끝까지 싸워서 법적으로 증명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슬퍼하는 이와 함께 슬퍼하라' 같은 성현의 가르침을 제대로 지킬 능력이나 '적' 혹은 먼 타인의 영혼마저 연민할 깊이를 못 가진 범속한 인간이기에, 죽음 앞에서는 그냥 잠시 멈추고 혼자서라도 묵례하면 될 듯하다. 침묵이 증오와 비참을 그나마 줄이고, 무엇보다 결국 스스로 죽음을 피치 못할 우리 가련한 영혼을 더 비루하게 만들지 않는 방법인 듯하다. - P257
 
죽음 이후 사람들은 수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당사자를 위한 애도의 마음은 침묵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보태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말을 얹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없다. 오히려 산으로 향할 뿐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개별적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돌아볼 차례다. 개별적 죽음이지만 이들도 명백한 사회적 죽음이다.

 

'연예인'이라는 특별한 삶의 방식과 직업 자체에 개재된 공통된 불안정성이나 딜레마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특수한 노동에 종사하면서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이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긴장을 늘 견딘다. - P269
 
연예인들의 삶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겠다라는 생각을 늘 한다. 스타 연예인으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기까지 올라오기도 힘들고 심지어는 무명 연예인으로 견디는 경우가 더욱 많다. 연예인은 특수 노동자로 일이 있을 때는 돈을 벌지만 일이 없을 땐 돈을 벌지 못하기에 늘 불안과 긴장 속에 살 수 밖에 없다.
 
대체로 최진실 씨와 그 가족은 수없이 많은 가난하고 평범한 한국 사람들이 그랬듯 불안전한 삶을 겪은 듯하다. 최진실씨 어머니가 쓴 책에 나타난 두 모녀는 지난 시대에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평범했던 부류의 여성이라 할 수 있다. 대스타가 되고 난 뒤에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런 여성은 여리고 약한 존재였다. 책에서 그들은 남성(남편)에 의지할 수밖에 없거나 남성의 권력과 폭력에 계속 휘둘리고, 주변의 소문과 평판에 좌지우지당하는 '착하고 순한' '여성'이다. 때로는 폭력적 가부장 자신도 그 피해자일 수 있는 가난과 좌절, 불안은 트라우마와 폭력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전이되고 또 (무의식중에) 물려진다. - P277
 
스타로서의 삶은 더욱 쉽지가 않다. 늘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고 파파라치가 따라붙으며 그들의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를 받는다. 최진실은 데뷔 전 가난을 겪었고 데뷔 후에는 스타로 승승장구했지만 결혼 후 삶의 변화를 마주해야 했다. 당시 사건을 둘러싸고 기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가십거리처럼 떠다녔던 시간이 길었다. 최진실은 그 시간을 무척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조성민과의 이혼 및 폭력 등의 사건을 보며 당시에도 무척 분노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존재한다. 여전히 데이트 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남성의 위계로 여성을 가해하는 사건이 자고 나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 10대 소년소녀인 이 '아이돌'들은 오늘날 선망과 성적 상품화의 대상이며, 글로벌화된 K-컬쳐의 첨병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21세기 한국의 일종의 새로운 '산업전사'인 셈이다. - P278
 
아이돌의 연령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그만큼 일찍부터 아이돌을 준비하고 그 기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10대에 데뷔하여 20대 중후반이면 아이돌을 끝낸다고 본다. 아이돌을 키워내는 것은 연예 기획사이고 그들은 아이돌을 상품으로 취급하며 돈이 될 때까지만 데리고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돌 계약 기간이 길어봐야 6-7년이라고 하니 너무 짧은 셈이다. 왜 아이돌은 계속될 수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 그녀들의 죽음을 야기한 사회적 요인인지 대체로 안다. 표면적으로는 여성혐오나 성차별, 그리고 잔인하고 상업적인 인터넷 미디어 문화와 '댓글'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심층에는 타자를 향한 분노와 '사회적 잔인성'이 있다. - P279
 
신체를 자원으로 삼은 존재를 가볍게 치부하고 함부로 대하는 문화는 오래됐지만 특히 여성에게 집중된다. 그리고 이는 넓은 의미의 '여성혐오'의 역사와 연결된다. - P280
 
여자 연예인들에게 유독 신체적 시선과 강요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왈가왈부하는 악의적인 댓글과 도를 넘은 선동은 열거하기에 넘쳐난다. 가족이 이렇게 당한다고 생각해봐 입장바꿔 생각해봐 라는 말은 이미 너무 식상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들이 쉽게 내뱉은 말과 글은 타인에게도 비수가 되지만 생각해볼 일이다. 진짜 그 연예인에게 갈 분노였던가.
 
'베르테르효과'는 어떤 사회적 상황의 결과이지 그 자체가 자살 현상의 '원인'은 아니다. 또 중요한 것은 너무 자주 발생하는 연예인의 죽음이 다른 연예인들은 물론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 청소년이나대중의 세계관과 생사관을 바꿔놓는 건 아닌가? 이 잔혹한 세계에서 자살이, 고난을 겪는 어떤 이들에게는 쉽게 '자기 선택'이라고 인식되는 건 아닌가? 2020년 11월 개그우먼 박지선씨가 불과 35세의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이해한다'는 반응이 너무 많았다. 나는 이런 현상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 P287
 
박지선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안타까움이 많았다고 여겨진다. 그녀는 어떤 무대이든 최선을 다했고 웃음을 위해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희극인이었다. 어머니와의 동반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있었겠지만 죽음 뒤에 이해한다는 반응. 글쎄~ 잘 모르겠다. 과연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가? 가까이에 있는 사람조차도 그를 다 이해할 수가 없을텐데.
베르테르효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연예인이 내겐 장국영이다. 4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장국영을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그의 시작과 끝. 수없는 억측과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난무했던 것이 기억난다.
 
삶은 대체로 의미 있는 것이며 자동적이고도 '가능적인 것'이다. 그런데 삶의 의미들은 화려하고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주로 '길고도 가는 것', 즉 사소한 것들에 있다.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란, 선험적인 것이거나 어딘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일 테다. 스스로 가꾸는 작은 것들이다. - P293
 
연예인들의 삶에서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중요하다는 것. 물론 그들은 일반 회사원이나 공무원들과는 다른 유형의 직업이기에 불안정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햇볕을 쪼이는 것, 여러 취미 생활들을 가지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외부의 자극을 쫒다보면 공허함과 두려움을 밀어낼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포털에서 연예 스포츠 기사의 댓글을 폐지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발달한 디지털 기술이 'N번방 사건' 같은 새로운 형태의 성폭력과 음란물 생산 유통을 가능하게 했듯 연예인을 대상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성착취와 폭력을 가능하게 한다. 얼굴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와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20년 4월 아이돌 가수 등 100여 명의 여자 연예인이 약 3000종의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로 추정돼서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 P297
 
설리, 구하라의 죽음을 계기로 연예 스포츠 기사의 댓글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후 스타의 자살은 계속되었다. 언론 보도에서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권고'는 존재하지만 클릭 수로 수익을 내는 상업 환경으로 자극적인 제목과 이미지 또는 선동 보도가 너무 많다. 그런 기사들에 노출된 대중은 기사의 심각성을 더욱 놓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의 심화로 인한 성착취와 성폭력 사건은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지점이다. 연예인의 이미지와 영상 등을 허락도 구하지 않고 노출시킨다는 것도 문제가 될텐데 심지어 기술 조작으로 가짜가 진짜처럼 둔갑하는 사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관심경제', '주목경제'가 더욱 심화된 상황을 '관종경제'라 불러야 할까? 극우 인종주의 행동이나 혐오발언은 주류적 가치의 위선과 '정치적 올바름'의 한계, 대의민주주의의 모순 때문에 더 번성하고 있다. - P300
 
혐오는 배제의 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나와 다른 인종과 사물들을 향해 내뱉는 혐오 발언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정치마저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양 극단을 달리고 있기에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묻히고 기득권의 목소리만 더욱 커지는 양상이 되어간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일자리'를 갖는게 더 힘들어지고 특정 계층에게만 허락되는 일이 될 때 존재 증명을 위해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많은 디지털 네이티브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근본적인 답을 '어른들'이 주지 못하고 있다. - P302
 
어린이,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우선순위 중 연예인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에인을 향한 시선이 좋지만은 않았다. 어른들은 딴따라라며 경시했고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목표로 심어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가?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이들도 이 길을 간다고 해서 나에게 좋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꿈의 경로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연예인에 더해 유튜버가 추가되었다.
 
자살이 복잡성을 지닌 한 사람의 존재에 일어나는 복합적인 사건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심리적이고도 사회적인, 유전적이면서도 의학적인 원인과 배경이 있고, 그것과 한 사람이 지닌 '문제상황'이 복합 작용을 지속적으로 일으켰을 때 자살행동이 가능해진다. - P317
 
한국의 부모나 친구는 왜 10대 청소년에게 스트레스가 될까? 자해나 자살생각을 극복한 10대는 "누군가 자신의 힘듦과 고통을 들어주는 것"을 원하며, "상담자와 부모, 친구의 공감과 지지로 극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극복' 이전에 애초에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되는 경쟁과 학교폭력 따돌림 문제가 만연한 교육 현실을 고치지 않고 청소년 자해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 P332
 
10대들에게 사실 면목이 없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을까 싶어서. 그저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즐기고 싶지만 주변 환경 자체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게 만든다. '누구 애는 어느 학원에 갔대' '이 과외를 받으면 좋대' '니 친구는 이렇게 잘만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수도 없이 듣는 질문들에 나 같으면 넌덜머리가 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다. 10대부터 이미 경쟁 구도로 시작하다보니 아이들의 자유는 일찍부터 없는 셈이 아닌가 싶다. 이에 덧붙여 아이들은 관계의 어려움, 폭력 등에 노출되며 더욱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가정불화, 학교폭력, 또래관계의 어려움 등 상장기의 가정이나 학교가 "부정적 사건을 경험"하게 만드는 곳이다. 문제는 그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성장기에 시작되었던 대인관계 문제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10-20대가 겪는 고통의 상당 부분은 10대 시절 학교에서의 경험과 가족 연인 친구 등 '친밀한 관계'에 개재된 한국식 폭력성과 젠더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332~333
 
어느 순간이든 강렬한 경험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10대 때 학교 폭력이나 성폭력에 노출되었다면~? 그들이 20대가 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인가?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기 어렵고 주변 이들을 더욱 경계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코로나 상황에 겹친 여성 청년층 자살 문제는 여성의 고용위기 및 경제상황과 관계 단절 등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도소매업, 여행숙박업 등 대면 서비스업의 위기 때문에 여성 고용은 전례없이 악화되었다. -P335
 
코로나로 음식업, 숙박업, 여행업 등 여러 자영업자가 피해를 입었는데 이것은 고스란히 고용 시장으로 연결된다.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훨씬 피해가 컸고 쉽게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여성 청년 노동자들이 잃자리를 잃고도 어딘가에 하소연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하였다. 차기 정부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대응책으로 많은 구제책이 이어져야 한다.
 
30대 자살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는 별로 없지만 중앙심리부검센터 심리부검 조사에서도 30대 자살자들에게 고용 안정성 문제와 직장 내의 폭력적 상황이 가장 심각한 '스트레스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해고와 실업, 그리고 '갑질'이 자살을 격발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 P336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자료에서는 40대 남성 자살자의 경우 "경제적 위기에서 발현된 심리적 위기"가 중요했다. - P339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자료에서 40대의 여성은 "우울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하고 사회적 관계로부터 철수하거나 관계를 단절하면서 심리정서적 지지기반이 더욱 취약해지며, 사업 부진 및 실패, 과중한 채무, 빈곤과 같은 경제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정신 건강 문제가 더욱 악화되며 사망"한다고 했다. - P340
 
40대 남성과 여성의 자살은 양상이 서로 많이 다르다. 남성은 경제적 위기에서 비롯되지만 여성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전업주부 등으로 전환되며 관계의 폭이 좁아지고 경력이 단절되면서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
 
70대 이상의 노인 자살자에게는 신체 질환과 우울증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배후에는 가족과 경제 문제가 있다. - P343
 
우리 사회는 노인의 빈곤율이 굉장히 높다. 나이가 들면 몸이 여기 저기 아픈 게 늘어나는데 곁에서 돌보아주는 사람마저 없다면 고독감과까지 더해져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대부분의 노인이 직업이 없는 상태가 많기 때문에 경제적 도움을 얻을 곳이 없다면 빈곤까지 더해지게 된다. 1인 노인 인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이것은 빈곤사로 이어지게 된다.
 
기존의 한국식 가족관계에서 가정폭력과 낡은 가부장 중심주의를 제거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 이는 단지 여성과 어린아이 같은 가족 구성원 뿐 아니라, 가해자의 자리에서 폭력을 행사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고립과 배제에 이르게 되는 남성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 P345
 
사회가 건강하기 위한 출발점이 어디일까. 바로 가정일 것이다. 가정이 건강하지 않으면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 폭력과 아동 폭력이 극심한 사회이다. 권위를 폭력을 통한 표출이 남은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가고 불안정한 가정은 사회에 강제로 내몰리게 된다.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가 한국을 방문하고 난 뒤, 이런 양면을 관찰하고 쓴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다. 이런 상황을 멈추거나 늦추어야만 자살과 이를 부추기는 광증과 폭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 P361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살펴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 사회에 내몰린 개인은 피폐해지고 깊은 관계가 아닌 보여주기 식의 관계 속에서 외로움과 고독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살자를 대할 때마다 우리는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더라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간접적 가해자이고 방관자일 수 있다.
어느 곳에서든 갑질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갑질로 만들어지는 것은 차별, 폭력, 따돌림, 학대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약을 먹거나 상담으로 해결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너무 거시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직장인 사회에서 자살 사건 적극적으로 산재로 다루기, 학교 마을 가족이 바뀌기, 인간의 연대를 만들어 혼삶과 경쟁을 극복하기. 자살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등등.
이런 작은 실천들이 이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그래도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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