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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아한 루저의 나라

category 리뷰/책 2022. 2. 3. 10:38
우아한 루저의 나라
저자 : 고혜련
출판 : 정은문고
발매 : 2021.12.15

 

대한제국에 대한 나의 생각은 늘 복합적이다.
한편으론 애썼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주저앉아버린 망국이라는 양가 감정이다.
사실 저 양분된 감정으로 설명하기에도 모자란 것 같지만.

개혁의 씨앗을 불태울 수 있었던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시절은 독립협회와 만민/관민공동회의 의지를 꺾어버린 이후로는 그 기회를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개항 이전에 자력을 키우고 외부에 귀를 기울였다면.
민심을 돌아보고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뇌물을 탐하고 백성을 수탈하고 임금은 아첨하는 자들의 편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짓이 반복되니 민란은 끊임이 없었고 백성들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이 책은 대한제국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3명의 독일인이 조선을 왔다가 가서 남긴 기록의 흔적을 옮겨놓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물에 대한 소개와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까지 정리하였다.


특히 첫번째 크노헨하우어의 강연문(1901)을 신선하게 읽었다.
크노헨하우어는 1897년 채굴권을 취득한 후 광산 채굴 지역을 찾기 위해 대한제국을 방문하였다.
1898년 2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체류하고 돌아가 1901년 2월 25일 조선에 관한 대중강연을 하였는데 그 전문을 실었다.

줄곧 등장하는 세창양행에 대한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1883년 고종은 조선사절단을 중국에 보내 조선의 근대화 자금을 위한 신용장을 발행하는 일을 하게 한다. 조선사절단은 상하이와 톈진에 머물면서 상하이의 자단메티슨, 톈진의 에드아르트 마이어와 만나서 지사 설립을 설득한다.
1883년 마이어는 독일 함부르크 상인 볼터에게 마이어회사의 지사를 설립 전권을 맡기는데 볼터는 제물포로 와 지사 이름을 세창양행으로 하고 조선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세창양행은 조선 최초로 차관 대출을 제공한 서양 기업이 되고 조선의 대출 지불이 끝날 때까지 증기선을 운행하면서 각종 이권을 얻는다.
1897년 가을 조선정부와 협상하여 세창양행은 광산 채굴권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읽으면서 몇 번 어이없거나 피식거리기도 했는데
차를 이용할 수 없는 조선에서 운송수단이라곤 가마나 마차였는데 그 울렁거림에 힘들어하고
체구가 작은 나귀에 짐을 균형있게 싣고 가파른 산을 올라가는 모습을 놀라움에 보기도 한다.(입이 떡 벌어졌을듯)
말의 교환을 위해서는 통역이 필요한데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어하는 부분도 있었다.
외국인 고위 공무원에겐 숙소가 제공되는데 막상 배정받으려면 끈기있게 기다려야 한다는 대목도 나온다. 이때 조선인 통역사들은 별일 아니라는듯 구경꾼들과 끝없는 대화를 한다는 대목에서 폭소하게 만든다.
부처탄신일에 축제를 하는데 북과 태평소 소리를 듣고는 유럽인 청각에 통증을 유발시킨다는 것에도 일면 이해되는 부분이 있어 웃었다.
조선의 황폐한 산림을 보고 한탄하는 부분은 나조차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채굴권을 얻기 위해 방문했다.
따라서 조선 정부와 끊임없는 기싸움도 벌여야 했고 내정 장소로 정해진 강원도 당고개 주민들과도 대치하는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므로 강연에서 그가 한 말은 전적으로 독일의 이익 앞에 설 수 밖에 없으므로 그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예쎈은 독일 예술사학자로 1913년 미국을 거쳐 일본을 답사한 후 쓴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 내용이다. 
예쎈은 식민지가 된 조선의 문화를 이왕가박물관을 방문해 유물을 들여다보며 든 생각과 일본인의 고대 문화와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의 문화를 수용한 일본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본다. 

예쎈은 동아시아의 고대 문화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일본을 방문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여서 충격에 빠진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왜 자국의 고대 문화를 지켜내지 않고 서양의 문물을 그대로 수용하지 하는 의문을 보인다)
조선은 신분에 대한 차이에 따른 차이와 남녀의 차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수공업자들이 왜 천민 대우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한다.
본인 스스로가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보니 장인 정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글에 대한 체계성을 보고 놀라움을 보이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예쎈은 독일이 배울 식민지 정책 중 예술행정 정책을 눈여겨 본다. 
일본이 식민지 왕족을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공예학교인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를 확장시켜 졸업하면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조선 일본의 박물관 상품을 생산하도록 만들었다고 한 것이다.
정작 이용되었을 왕족을 생각하면 뒷맛이 씁쓸하다. 

참고로 크노헨하우어의 강연문과 예쎈의 여행기에는 역사 오류가 등장한다.
조선에 대한 지식이 성립되어 있지 않았을테니 감안하고 보아야 할 부분이다. 

먼저 크노헨하우어의 강연문 中

일본인들은 12세기부터 조선을 주시했습니다. 때로는 한반도의 남쪽 전체, 심지어 신라조차도 일본 소유였습니다.
(중략)
일본은 16세기에 20년 동안 잔인한 전쟁으로 조선을 정복했습니다. 
평화협정으로 내건 조건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조선인은 매년 36명의 인간 피부를 일본에 전달해야만 했습니다. 나중에 이 고통은 완화되었지만 농산물 등이 이를 대신했습니다.



예쎈의 여행기 中

6년 동안 전쟁을 하며 힘들게 조선을 점령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곧 죽었다. 
그의 후계자는 조선에 관한 권한을 만주중국(청나라)에게 넘겨줬다. 
다만 항구도시 부산만 일본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었으며 일본은 수백년동안 조선 땅에 한발을 걸치고 있었다.

고려 왕조(935~1392)는 하위 왕국으로 중국에 귀속되었으며, 고려 말부터 한반도 지역에 지속적으로 고려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세 번째 라우텐자흐 헤르만의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여행' 이다.
이는 1933년 8월부터 9월까지 압록강 어귀부터 백두산 천지까지의 여행기다.
그는 같은 해 7월부터 10월까지 지형학과 식물, 농업 등 경제 현황 탐사를 위해 조선을 여행하였다.
남으로는 제주도, 지리산, 동으로는 울릉도, 북으로는 백두산까지 이어졌다. 

그는 한 나라의 위도가 이리 다양한 것에 놀라며 기온차에 주목한다.
백두산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식물을 수집하고 한라산의 수종과 비교하는 작업도 한다.
백두산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극찬한다. 
그의 여행기에 강도라는 단어가 왜 나오나 궁금했는데 여행하면서 몇 차례 강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저자는 이들을 독립군이 아닐까 추측한다. 게릴라 집단이라고 묘사한 걸 보면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라우텐자흐 교수의 여행기를 보니 솔직히 다른 걸 떠나서 너무 부러웠다. 
백두산 여행기가 이제는 너무 멀게 느껴져서인가. 


사실 대한제국이라고 하기에는 두 명의 독일인들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좀 애매하다.
용어에는 괄호 안의 설명을 통해 자세히 실어놓은 것은 저자의 정성이 돋보였다. (다만 너무 길어지는 경우가 있어 책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도 발생할 것 같아 이 점이 아쉬웠다. 차라리 아래 주석을 이용하거나 했다면 어땠을까)

독일인 3명을 통해 당시 대한제국과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과 문화적 차이가 크니 조선인들의 태도나 생활 양식 등에 경계나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조선에 대한 무지, 그리고 선입견이 있는 상태에서 서술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감안하고 보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한국근대사 자료를 얻은 것 같아 기분 좋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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