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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yes24.com/Article/View/17876

이탈리아에는 두 개의 유명한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있다. 하나는 피렌체에, 다른 하나는 베네치아에 있다. 피렌체 르네상스가 미켈란젤로의 조각적인 힘으로, 베네치아 르네상스가 티치아노의 색채가 풍성한 회화로 대표되는 것처럼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회화보다 조각이 유명하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약탈」이 천정을 뚫을 듯이 우뚝 서 있다.

그에 비하면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색채의 향연이다. 한때 유럽 미술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시대부터 18세기에 이르는 500년 회화사가 총정리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각보다 회화가 우세했던 베네치아 미술의 특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조르조네, 티치아노, 카르파초, 틴토레토……거장들의 숨결이 벽면에 아로새겨져 있다.

베네치아 풍경

물길을 따라 그림을 보러 간다. 출렁이는 물살에 흔들거리면서 배를 타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것은 기분부터 다르다. 한낮의 태양의 뜨겁게 일렁거린다. 배를 타고 가는 미술관이 또 있던가. 템즈강을 따라 테이트 갤러리와 테이트 모던 사이를 이어주는 셔틀 편이 있긴 하지만, 베네치아의 대운하를 따라서 움직이는 느낌은 무척이나 상이하다. 수상버스에 앉아 운하를 따라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향하는 여정은 즐겁다.

넘실거리는 물결이 햇살을 받아 반사된 영롱한 빛은 베네치아를 어느 도시보다도 매혹적으로 만든다. 하늘과 바다 양쪽에서 쏟아지는 변화무쌍한 빛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화폭에 생동감을 불러일으켰다. 건물 벽면에 부딪쳐 현란하게 움직이는 빛은 화가들의 색채를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그 그림들이 여행자들을 몽환적인 세상으로 끌어들인다. 베네치아 르네상스 그림들을 본다는 것은 태양과 바다가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베네치아의 소년과 소녀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1750년 회화와 조각, 건축 등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로마나 피렌체와 더불어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거장들의 명맥을 잇기 위해 세워진 아카데미아는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미술 정규 교육을 행하는 학교로 자리 잡아 나갔다. 지금은 미술관에 작품이 걸려있는 티에폴로나 하예스 같은 거장들이 선생이 되어 직접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곳이다. 1807년 나폴레옹 점령 시기에 시스템은 재편되었다. 수도원과 교회, 학교 같은 여러 조직들이 해체되고 통합되면서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현재의 위치로 옮겨오게 된다.

밤의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도시 안에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살고 있었기 때문에 협동정신을 추구했다. 그래서 스쿠올라라는 신도회가 설립되었다. 특정한 평신도 집단이 모여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도시 곳곳에 건물들도 생겨났다. 지금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과거 스쿠올라 델라 카리타(Scuola della Carita)가 있던 곳이다. 가장 거대한 여섯 개의 스쿠올라 중 하나인 스쿠올라 델라 카리타는 1260년 설립되었고, 대운하 근처에 건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1343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을 거친 유서 깊은 건물이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베네치아 르네상스 화가들은 피렌체 화가들에 비하면 덜 알려진 편이다. 르네상스 미술 자체가 피렌체를 중심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네치아 화가들은 또 하나의 이상을 화폭에 구현해냈다. 색채를 놓고 보면 그 화려함이라는 측면에서 피렌체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그런 베네치아 화파의 특징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 젠틸레 벨리니의 「성 마르코 광장의 예배 행렬」

젠틸레 벨리니, 「성 마르코 광장의 예배 행렬」
(Procession of the True Cross in Piazza San Marco), 1496

성 마르코 광장의 예배 행렬(부분)

벨리니(Gentile Bellini, 1429~1507) 집안은 베네치아 최초의 미술 거장 집안이다. 젠틸레 벨리니는 화가인 야코포 벨리니의 아들이며, 동생은 조반니 벨리니이다. 거장 안드레아 만테냐는 젠틸레 벨리니의 매부였으니 그야말로 선구적인 화가 가족 공동체였던 셈이다. 젠틸레와 조반니 벨리니 형제는 베네치아 유화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해나갔다.

거대한 「성 마르코 광장의 예배 행렬」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베네치아의 풍경을 보게 된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을 성 마르코 광장에 화합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종교인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전부 똑같아 보여서 지루해 보인다면 아마도 그것이 젠틸레 벨리니가 추구했고,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상으로 삼았던 화합의 의미일 것이다. 개성을 추구하기보다 공화국을 위해 모두가 합심하는 자세. 젠틸레 벨리니는 그런 이상적인 세상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것이다.


2. 조반니 벨리니의 「성 조베 제단화」

조반니 벨리니, 「성 조베 제단화」(San Giobbe Altarpiece), 1487년경, 471*258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경건해진다. 그것은 하나의 신성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성모는 아기예수를 안고 대리석 옥좌에 앉아있다. 그 주위를 여섯 명의 성인이 둘러싸고 있다. 정지된 동작, 무언의 대화가 오간다. 오른쪽에는 화살을 맞은 성 세바스찬이 있다. 그의 고통마저도 이 그림에서는 온화함으로 변하는 것 같다. 인간 세상이란 얼마나 따사로울 수 있을까.

아래에 있는 세 명의 천사 뮤지션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는 형 젠틸레 벨리니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성모와 성인들이 영구불변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다.


3. 조르조네의 「폭풍우」

조르조네, 「폭풍우」(The Tempest), 1508년경, 83*73

조르조네(Giorgione, 1478∼1510)의 「폭풍우」 앞에 서면 초록빛이 주는 신비에 사로잡힌다. 이 그림은 한 폭의 그림임과 동시에 한 편의 시이기도 하다. 만물이 초록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 초록빛 구름 사이를 노란 번갯불이 가로지르고 있다. 그 순간에도 평화가 깃들어 있다. 풀숲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 작은 시내 건너편에서는 군복을 입은 젊은이가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여인은 관람객들을 바라본다. 도발적이면서도 온후한 느낌이 그림 전체에 감돈다.

많은 평론가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렸다.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네 원소에 대한 묘사라는 평, 인간의 감각을 표현한 우의화라는 평. 보고 있으면 작은 그림 속에 많은 생각들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초록빛 평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4. 비토레 카르파초의 「미친 남자의 치유」

비토레 카르파초, 「미친 남자의 치유」(Healing of the Madman), 1494, 365*389

미친 남자의 치유(부분)

이 작품은 젠틸레 벨리니의 제자였던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 1460~1527)의 초기작품에 속한다. 그는 스승에 비하면 무척이나 다채롭고 활기 넘치는 그림들을 그렸다. 「미친 남자의 치유」에서도 베네치아의 풍경 속에 인물들을 자유롭게 그려 넣었다.

무언가를 행하고 있는 2층의 분위기와 달리 사람들은 각각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다. 오렌지빛과 푸른색으로 물든 하늘, 누런 구름들, 목조다리와 황금 장식들로 전체적으로는 갈색 톤이 주조를 이룬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운하 건너편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한가로이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 베네치아의 일상적인 풍경을 보는 것 같다. (그림 왼쪽 하단은 손상을 입었는지 심하게 변색이 되어 있다.) 곤돌라 위에는 카르파초의 그림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한가하게 앉아있다. 페기 구겐하임도 강아지를 데리고 이렇게 운하 위를 떠다니지 않았을까.


5. 티치아노의 「성모 마리아의 봉헌」

티치아노, 「성모 마리아의 봉헌」(Presentation of the Virgin), 1534/38, 345*775

성모 마리아의 봉헌 (실제 그림)

원래 이 그림은 스쿠올라 델라 카리타의 건물 벽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스쿠올라 델라 카리타가 현재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되면서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벽은 벽임과 동시에 티치아노의 대작이기도 하다. 한 폭의 그림이 건물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가다가 이 작품을 보고는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어린 마리아에게서 나오는 초자연적인 빛이 크나큰 광휘를 느끼게 한다. “그녀는 태양보다 더 아름다우며 모든 별들을 무색케 한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90~1576)는 이 그림을 통해 베네치아를 솔로몬 시대의 영광으로 되돌려놓았다. 스쿠올라 델라 카리타의 지도자들이 하나의 기적을 바라보고 있다.


6. 티치아노의 「피에타」

티치아노, 「피에타」(Pieta), 1575, 389*351

미켈란젤로가 아름다운 선으로 피에타를 표현했다면, 티치아노는 다시 색으로 피에타를 묘사했다. 자신의 젊은 시절 현란하고 화려했던 색채를 거부하고 단조로운 회색빛 무조 톤으로 죽음을 묘사했다. 누구보다도 명예롭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노 거장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스타일을 거부하면서 무채색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티치아노의 「피에타」 앞에 서면 경외감이 들곤 한다. 좌우에 서 있는 입상들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고, 아기천사가 든 횃불은 곧 꺼질 것 같다. 화려한 색깔의 옷과 장식들은 이제 잿빛이 되어 버렸다. 생기 넘치던 육체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인간의 육신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보라.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티치아노 자신이기도 한 히에로니무스의 모습을 보면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7. 틴토레토의 「노예의 기적」

틴토레토, 「노예의 기적」(Miracle of the Slave), 1548, 416*544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으면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줄리아 로버츠처럼 틴토레토(Tintoretto, 1519~1594)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의 그림은 드라마틱하면서도 화려한 색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는 한가운데 발가벗겨진 채로 고문을 받고 있다. 한 남자는 망치를 들고 있고, 한 남자는 창을 겨누고 있다. 노예는 고통 받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순간 그를 구하기 위해 성 마르코가 다가오고 있다. 그의 역동적인 동작. 그래서 이 그림은 「산 마르코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엄숙하고도 경건한 순간을 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미켈란젤로를 연구했다는 틴토레토답게 조형적인 느낌도 뛰어나다.


8. 베로네제의 「레비 가문의 향연」

베로네제, 「레비 가문의 향연」(The Feast in the House of Levi), 1573, 555*1280

「레비 가문의 향연」은 엄청난 크기의 대작이다. 당대에도 가장 거대한 사이즈의 그림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이유로 이 작품은 유명해졌다. 베로네제(Paolo Veronese, 1528~1588)는 도미니칸 수도회의 주문을 받고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그러나 이 작품이 완성된 후 베로네제는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말았다. 그것은 자유롭고 때로는 방종하기까지 했던 베네치아의 권세가 약화되고 있었던 탓이기도 할 것이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를 베네치아 귀족 집안의 호사스러운 연회와 결합시킨 이 그림은 수정 명령을 받았다. 감히 성스러운 만찬에 난쟁이들, 어릿광대들 같은 상스러운 것들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베로네제는 이 그림을 수정한 후 제목도 「레비 가문의 향연」으로 바꾸어버렸다. 스페인의 거장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 여행 중에 아마도 베로네제의 풍자적인 묘사를 보았을 것이다. 「레비 가문의 향연」을 보고 자신의 작품에 난쟁이들과 어릿광대들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9. 카날레토의 「열주의 건축적 카프리치오」

카날레토, 「열주의 건축적 카프리치오」(Architectural Capriccio with Colonnade), 1765, 131*93

영국과 스페인에 있는 미술관에서 접하게 되는 카날레토(Antonio Canaletto, 1697~1768)의 그림은 아름답다. 그는 실제보다도 더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풍경을 그렸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카날(Canal)이었다. 이름부터 대운하를 연상케 한다.

카날레토가 그린 아름다운 풍경화만 보다가 이 그림 앞에 서면 깜짝 놀라게 된다. 이곳은 마치 화려했던 고대 궁전의 폐허 같다. 버려졌던 알함브라 궁전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과거의 영광은 스러지고 아름다움은 허물어져버렸다. 거기에서 미묘한 사색의 순간이 시작된다. 마치 전설에나 등장하는 신비의 동굴로 들어갔다가 아무도 없는 고대 유적지에 홀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공간. 카날레토가 보여주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의 깊이에 빠져들게 된다.


10. 티에폴로의 「뱀들의 징벌」

티에폴로, 「뱀들의 징벌」(Scourge of the Serpents), 1732/35, 164*1356

뱀들의 징벌(부분)

이 그림은 인터넷 상에서는 그림 전체를 볼 수 없는 것 같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로로 긴 그림이라서 부분도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역시 미술관에 가는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티에폴로의 방이라고 불러도 될 전시실이 하나 있다. 그곳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파랑색으로 가득 차 있다.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밝은 블루를 배경으로 고통에 처한 인간들은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의자에 앉아서 찬찬히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인간들의 표정을 바라본다. 색채와 인체의 아름다움이 잘 어우러져 있다. 거기서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