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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나 아렌트 평전

category 리뷰/책 2025. 1. 5. 10:48
 
한나 아렌트 평전
저서를 펴내며 일평생 전체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한 뒤 발표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격렬한 비판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생애와 저작에 대한 관심은 사후 5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있다. 국내에도 관련 서적이 100여 권 나와 있으며, 2022년 한 해에만 열 권 가까운 신간이 출간되었다. 《한나 아렌트 평전》은‘평전’이라는 제목으로는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출간된 책으로
저자
사만다 로즈 힐
출판
혜다
출판일
2022.09.30

2년 전 나온 책을 이제 읽게 되었다. 너무 묵힌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련다. 아렌트는 현대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꼭 어디에서든 만나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최근 세계철학사를 읽으면서 결정적으로 그녀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입문서가 적당할까 싶어 검색을 해봤는데 남아 있는 책들 중 입문서로 하기에는 결국 이 책만한 것이 없다 생각했다.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하노버 린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독립적이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이야기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자라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뿌리가 유대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그럴 때 어머니는 “언제나 당당하게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라고.”(P37) 했다는데 그녀도 강단 있는 어머니의 성향을 자연스레 물려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세에 천재들이 나오는 법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언급하면 입이 벌어질 정도의 철학 사상가들을 한나는 많이 만났다. 그녀는 과연 시선을 잡아 끄는 힘이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녀 곁을 스쳐간 중요 인물 중 세 사람을 꼽는다면 하이데거, 야스퍼스, 블뤼허라고 여겨진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는 개인적으로도 달랐지만 사상적으로도 달랐던 것 같다. 하이데거가 현상학적 실존주의를 주장했다면 야스퍼스는 소통과 대화, 현실 탐구를 중요시 여겼다. 한나는 야스퍼스의 사상적 측면에 더욱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의 논문 주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웃 사랑의 개념을 발전시킨 ‘아모르문디(세계를 사랑한다)’였기 때문이다. 

 

한나는 하이델베르크 재학 시절 지식인 모임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며 다양한 인맥을 쌓았다. 이 무렵 첫 번째 남편인 귄터 안더스(슈테른)도 무도회에서 만나 동거 후 결혼했다. 

독일의 반유대주의가 강화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되자 한나는 현실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고 베를린 정치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한동안 프로이센 도서관에서 반유대주의 관련 자료를 수집하다가 사서의 신고로 체포되고 만다. 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다(안더스는 이미 프랑스로 가 있는 상태였다). 

 

한나는 샹젤리제 거리에 있던 ‘아그리퀼티르&아티자나’에서 일하며 유대인들을 가르치고 평생지기인 차난 클렌볼트를 만난다. 뿐만 아니라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벤야민 등과 만날 수 있었다. 

한나는 시오니스트였는데 유대인에게도 조국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유에는 공감하지만 그 방법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는 1937년 안더스와 이혼을 했다. 1936년 에른스트 블뤼허를 강연 자리에서 만났고 이후 결혼을 하게 된다. 블뤼허는 그녀가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법적 남편이었다. 

 

독일이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한 뒤 2차 대전이 시작되자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 남성의 강제 징집 명령이 떨어진다. 이때 블뤼허도 끌려갔는데 병의원 소견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1940년이 되면 파리 시장의 발표로 블뤼허, 한나 모두 각각 강제수용소로 이송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한나는 수용소에서 5주 간 있다가 탈출을 감행했다. 남편의 행방을 알 수 없던 한나는 수소문하다 거리에서 블뤼허를 만난다(블뤼허도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더는 유럽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한나는 미국 비자를 얻고 떠나기 전 벤야민의 무덤을 찾는다(벤야민도 미국으로 가려 했으나 입국이 가로막혀 자살하고 말았다). 한나 아렌트는 벤야민을 친구 이상으로 특별하게 생각했다. 미국행 배에 몸을 실은 한나와 블뤼허의 짐에는 벤야민의 유작들도 들어 있었다. <역사철학테제> 원고도 있었는데 한나 부부는 대서양을 지날 때 같은 처지인 난민들에게 큰 소리로 이 원고를 읽어주었다(P143). 

이 무렵의 일들은 현실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연적인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는데 영화도 이보다는 극적일 수 없을 듯 하다. 이것이 현실이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놀랍다.

 

미국에 건너간 그녀는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간다. 이때 한나 아렌트의 시오니즘을 향한 태도가 달라진 것에 눈길이 갔다. 그녀는 독일과 프랑스에 있을 때 유대인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히브리어 강좌를 개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유대인 청년을 인솔해 직접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시오니스트였다. 그런데 1942년 빌트모어회의(시오니스트 회의)에 참석하면서 견해에 변화를 가져왔다. 한나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다비드 벤구리온 수상의 제안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다. 팔레스타인은 자치 국가가 아닌 전후 영국연방 국가 내에서 설립되어 반유대주의 처벌에 대한 범죄를 설립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저작물들이 이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한다. 

 

1951년 출간한 <전체주의의 기원>은 ‘20세기에 전체주의가 출현한 현상의 기원이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어쨌든 제 해법은 전체주의의 주요 요소들을 발견해내고, 적합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범위에서 그 요소들을 역사 속으로 가져가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체주의의 역사를 쓴 게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 전체주의를 분석했습니다.(P194)” 이 책은 전체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해하여 하나씩 살피고 이것이 어떻게 하나로 묶여 전체주의가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폭정은 개인을 고립시켜 정치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공적영역을 파괴하지만 전체주의는 또한 개인의 사적 삶도 파괴할 것을 주장한다. 전체주의는 외로움에 기반한다(P197). 

 

1958년 발간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조건(노동, 작업, 행위)은 자유에 달렸다고 언급한다. 자유를 위해서는 삶의 각기 다른 영역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인간의 다양한 활동과 각 공간들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아 모든 활동이 사회적이고 소비를 위한 노동 활동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간) 이동의 자유가 상실되고 있는지 살핀다.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출간된 후 그녀는 논란의 중심에 선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인간이 겪는 일과 인간의 행동”을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로 여기고 잡지 취재를 강행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그녀가 느낀 감상은 실망스러움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악은 다루어지지도 않았고 “유대인의 슬픔에 대한 역사적 실태 조사”에 촛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한나는 아이히만이 저지른 짓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기에 아이히만은 죽어 마땅했다. 인간조건의 기본 원칙인 다원성을 위반했다.고 스스로 재판의 결론을 내린다(P234). 공적영역에서 진실이 자취를 감추면 정치적 자유가 위협을 받는다. 한나가 깨달았듯이 공적영역에서 내 경험과 관련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진실을 말하는 자들은 집단적 경멸의 대상으로서 언제나 정치영역의 바깥에 서 있다(P243).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책은 특히 <혁명론>이었다. 지금 국내 정치가 말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1963년 무렵 미국이 베트남 전쟁, 민권운동 등으로 시끄러웠을 때 나왔다. 한나는 정당이 사라지면 독립된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더욱 힘을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나의 주장에 따르면 정당 체계는 유권자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국민이 스스로 후보를 결정하도록 하는 대신정당 체계 안에서 가장 힘이 센 후보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P249). 12.3 이후로 단임 대통령제를 중임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 등으로 이제야말로 정치 시스템 헌법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사실상 굳어진 양당제로 인한 문제도 만만치가 않다. 지금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기는 한가. 양측 간 아귀다툼으로 인해 국민들은 피로만 쌓여가는 형국이다.

거짓말이 들통나면 거짓말쟁이는 단순히 의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같은 주장은 공적영역을 바꿔놓을 수 있다. 거짓이 계속해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거짓이 진실을 음해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우리의 능력이다(P257). 이 부분 읽으면서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 하는 행위를 거울처럼 보고 있는 줄 알았다. 진실과 거짓을 우리는 반드시 구분해서 저들에게 ‘너희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진실을 호도하지 말라고’ 제시해야만 한다. 

 

한나는 1968년 <정신의 삶>을 사유, 판단, 의지 3부작을 생각하며 쓰기 시작했다. <인간의 조건> 후속작의 성격이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어떤 사람들은 악의 무리에 동조하는지 그 이유를 사유와 상상력에서 찾았다. 현실을 살아가고 내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제대로 보려면 철학사상이 아닌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P212)”

한나는 사유를 ‘난간 없는 사유’로 표현했다. 사유란 붙잡을 곳 없는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한나의 은유에 따르면 붙잡을 곳 하나 없을지 몰라도 계단이라는 서 있을 곳은 주어진다. 자유롭게 밟고 디딜 이 계단이야말로 한나에게 유서 없이 남겨진 유산이었다(P307).

 

이 책은 이렇게 한나 아렌트 삶의 궤적을 확인하며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녀가 집필하고 출간한 책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나아가 당시 세계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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