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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채식주의자

category 리뷰/책 2024. 12. 31. 18:29
 
채식주의자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입지를 한단계 확장시킨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를 15년 만에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식물적 상상력의 강렬한 결합을 정교한 구성과 흡인력 있는 문체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섬뜩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한강만의 방식으로 완성한 역작이다.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던 『채식주의자』는 “미국 문학계에 파문을 일으키면서도 독자들과 공명할 것으로 보인다”(뉴욕타임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다”(가디언)라는 해외서평을 받았고 2018년에는 스페인에서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는 등 전세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100만부 가까이 판매되었다.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부터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하는 ‘영혜’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은 영혜를 둘러싼 세 인물인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에서 서술되며 영혜는 단 한번도 주도적인 화자의 위치를 얻지 못한다.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부장의 폭력, 그리고 그 폭력에 저항하며 금식을 통해 동물성을 벗어던지고 나무가 되고자 한 영혜가 보여주는 식물적 상상력의 경지는 모든 세대 독자를 아우르며 더 크나큰 공명을 이루어낼 것이다.
저자
한강
출판
창비
출판일
2022.03.28

어떤 책은 읽기 전후 독자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만들기도 한다. <채식주의자>는 한강 작가의 책으로 두 번째 만나는 책이었는데 역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3명의 관점에서 사건을 풀어낸다. 육식을 거부하다 나중에는 먹는 것마저 온몸으로 거부한 사람, 그 사람의 육체를 탐닉하고자 했던 사람, 안정을 추구했지만 사실은 욕망 자체를 내려놓으려 했던 사람?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그는 자신이 어떤 경계에 와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멈추고 싶지 않았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세 이야기가 결국은 소유와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먹는 행위도 자신의 취사선택에 따른 것이므로 욕망이다. 1부의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평소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내가 짐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짐스러움이, 괴로움이 과연 얼마나 갈까. 그동안의 육식 위주의 내 식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면 몇 십년동안 이어온 패턴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음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금기를 넘어서려 하는 소유와 욕망도 마찬가지다. 평범함과 안정성은 편안하지만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에게 모두 다 있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무난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소유하고자 했던 것을 포기했던 적이 많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특히나 내 마음을 특히 흔들었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점을 많이 느껴서일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튀지 않는 무난한 성실함으로 인생을 살아 왔는데 그것이 그저 ‘견뎌내며 산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누군가는 내게 “그렇게 늘 웃지 않아도 돼.”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마음을 좀 내려놓았지만.

한강 작가의 문장은 섬세하면서도 날카롭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고통을 드러내며 독자에게 질문한다. 쉽게 결론지을 수 없는 문제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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