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의 소설 <인생>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다고 해야 하겠지. 중국어 오디오북을 들으며 번역본으로 함께 읽었다.
어느 청년이 푸구이라는 노인을 만나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원어 제목은 活着(활착: 살아간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원어 제목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대략 1940년 후반 무렵부터 1960~1970년대 무렵까지 중국이 배경이므로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국공내전, 문화대혁명)이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비중을 높게 두지는 않았다고 느꼈다. 사건은 밑밥 역할만 할 뿐이고 그걸 맞닥뜨린 개인의 역경과 감정들을 표현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건을 겪게 될까.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나름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사회 생활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개인의 환경에 따라, 사건을 맞닥뜨리는 태도와 자세, 행동력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엔 빈둥거리며 놀고, 중년에는 숨어 살려고만 하더니, 노년에는 중이 되었네.
젊은 시절 푸구이는 노름과 여자에, 폭력까지 쓰니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이가 들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그래도 끝까지 캐릭터를 품기는 어려움). 아내인 자전, 딸인 펑샤, 아들인 유칭이 갈수록 안쓰러워 독서하면서 계속 눈물이 나 혼났다. 보통 슬퍼도 눈물 찔끔 흘리고 마는데 펑펑 울고 말았다.
어릴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많다. 그래서 그 소중함을 잘 몰라 쉬이 지나쳐버리고 뒤늦게 후회를 하곤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 중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학교 친구는 학교를 떠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각자 일이 바빠 소원해져서 헤어지고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직장을 떠나면 그만이다(한 직장에 오래 붙어 있는 적이 거의 없다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결혼 여부도 변수가 된다. 친한 친구들도 각각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아무래도 각자 배우자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까. 그저 주기적으로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이 다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부고를 듣는 경우가 참 많아졌다.
위화의 부모님이 의사 출신이라 죽음을 간접적으로 많이 봐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상으로 특별한 순간보다는 일상과 평범함의 소중함에 대한 강조가 은연 중에 드러나있다. 살면서 대박을 만난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있고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고, 몸이 아프지 않다면 1차적으로는 다행이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이는 부가적인 사항이라 생각한다.
세월이 아무리 힘겨워도 견디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인생>을 통해서 남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폐 끼치지 않고 죽느냐, 죽을 때 내가 먼저 죽느냐, 나중에 가느냐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전의 삶을 통해 얻었다. 결국 매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에게 잘 하고 논란 만들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무척 어려울 듯).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원래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상황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제는 물음표가 생긴다. 내가 먼저 죽는다면 그가 살아야 할 짊도 만만치 않겠구나, 그가 먼저 죽는다면 나도 또한 그리할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살아온 세월만큼 그 그리움이 더해지지 않겠는가.
사람도 때가 되면 익어야 하는 법이라네. 배가 다 익으면 땅으로 떨어지듯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지.
천천히 들판은 고요 속에 잠기고, 사방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노을빛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나는 이제 곧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단단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평범해서 좋았던 문장들이 꽤나 많아서 필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론자는 아니다. 다만 주어진 환경이 다를 뿐이고 이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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