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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 일상 생활의 구조

category 리뷰/책 2024. 7. 25. 14:32

물질문명과 시장경제는 물과 기름처럼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어느 사람, 어느 대리인, 우리가 관찰한 어느 활동이 경계의 이쪽 혹은 저쪽에 있다고 단호히 결정하는 일이 늘 가능하지는 않다. 따라서 물질문명(civilisation matérielle)과 공존하기도 하고 이를 교란시키기도 하며, 또 물질문명과 모순됨으로써 오히려 물질문명을 설명해주는 경제문명(civilisation économique, 이렇게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면)을 물질문명과 동시에 소개해야 한다. 그렇지만 분명 그 둘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하며, 그것이 매우 큰 중요성을 띤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경제문명과 물질문명의 두 요소로 구성된 이 복식부진화로부터 비롯되었다. 15-18세기의 물질생활은 거의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히 느리게 변화해온 고대 사회와 경제의 연장이다. 그 과정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 오래된 사회와 경제위에 필연적으로 그 무게를 짊어지우는 상부사회(une société supérieure)를조금씩 형성해갔다. 그리고 언제나 상부와 하부는 공존하되 그 각각이 가지는 크기의 비율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 P25~26



페르낭 브로델의 대표 저작 읽기를 이제야 제대로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어찌 보면 재밌고 또 어찌 보면 재미 없는 묘한 책이다. ‘왜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적어 놓았어?’ 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 그래서 더 거시사를 통해 발견하지 못하는 재미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전 세계 문명의 흐름을 엿보고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자본주의의 씨앗이 될 만한 사례를 통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어떤 기호로 읽느냐는 본인의 선택일 것이다. 나는 끌리는 주제에 좀 더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음식(음료), 가구, 집, 의복부터 기술, 화폐, 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을 다루는데 개인적으로 특히 음식, 가구-집, 의복이 재미 있었다. 



커피가 노동 음료로 각광을 받았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하루에도 맥심 커피를  몇 잔씩 때려 넣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양 강장제로 하루를 버티는 힘이었다. 지금은 맥심 커피를 끊었지만 하루에 10 잔도 넘게 마시는 사람을 보면 놀라기도 했었던. 

노동자들이 해뜰 무렵에 일터에 나가면 등에 양철로 만든 통을 지고 가서 카페 오 레를 “흙으로 구운 공기 하나에 2수씩 받고” 판다. 이것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노동자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음식에서 경제성과 자양분과 향취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것이 저녁까지 버티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식사를 두 번밖에 하지 않았다. - P347



그리고 포크, 젓가락, 수저 등 도구를 사용해서 음식을 먹기 시작한 것이 생각보다 늦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도구를 사용하기 전 식사 테이블에는 냅킨이 제공되었고 물병과 대야를 이용해서 손을 씻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식사 때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문명의 한 기준인 것처럼 되었지만 실상 그들도 그것을 사용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다.

개인별 포크는 약 16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베네치아에서부터 느리게 퍼져나갔다. 독일의 한 목사는 이 악마 같은 도구를 비난했다. “우리가 이 도구를 사용하기를 하느님이 원하셨다면 우리에게 왜 손가락을 주셨겠는가?” 몽테뉴가 음식을 너무 빨리 먹어서 “때로는 너무 급한 나머지 내 손가락을 깨뭅니다”라고 사과하는 것을 보면 그는 포크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 P270



중국인들은 뜨거운 물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몸이 안 좋거나 아프거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무조건 상대에게 건네는 한 마디가 있다. “多喝热水”(뜨거운 물 마셔요)!”  예전에 중국 여행을 하면 맥주조차도 시원한 것을 먹기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시원한 것을 구비해 놓지만. 아무리 더워도 뜨거운 커피만 찾는 나와 비슷한 것인가. 

19세기의 한 여행자에 의하면 차 재배가 잘 되지 않는 북부 중국에서는 “하층 사람들이 차를 단지 사치품으로만 알고 있으며 부유한 사람들이 차를 마실 때와 같은 즐거움으로 뜨거운 물을 마신다. 그들은 여기에 차라는 이름을 갖다붙이고 만족한다.” - P341



(장롱과) 옷장도 18세기나 등장했다고 한다. 장롱이 최신식이었는데 옷장이 등장하면서 그 자리를 꿰찼다고 한다. 장롱 이전에는 아마도 벽장을 이용하여 물건을 보관했을 것이다. 예전에 시골집에 내려 가면 안쪽으로 벽에 공간을 내어 물건을 비치해놓던 기억이 났다.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인력과 기계 노동을 비교하는 부분에는 AI와 경쟁하게 될 인간의 노동력에 대해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의 힘만으로 따지면 그 어떤 것에 견주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미약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장점이 있으니 그것으로 타개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사람은 보잘것 없는 모터라고 하더라도 일을 하는 데에 많은 도구들을 사용하고, 또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초보적인 동력기구들을 사용함으로써 극히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배가시킬 수 있다. - P445



이런 소주제를 다루면서도 ‘문명’과 ‘문화’, ‘야만’이라는 화제를 꾸준히 글에 삽입해 놓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중국, 이슬람이 13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발달된 문명과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왜 유럽이 그들을 상대로 승리했나 하는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석탄이나 화포를 일찍부터 사용한 중국은 산업혁명 무렵이 되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가. 이는 수력을 이용하여 철을 이동시키고 용광로가 사용되었음이 이유라고 밝히는데 그렇게 발전을 이룬 것은 알겠지만 중국보다 왜 앞서갔는가를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중국인들은 기원전 5세기경에 이미 철의 주조를 알고 있었고, 일찍이 석탄을 사용했으며, 기원후 13세기에 코크스를 이용해서 광석을 용해했던 듯하다. 유럽은 14세기까지는 용해된 상태의 철을 얻지 못했으며, 아마도 17세기에 코크스를 사용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대체로 1780년 이후이다. 중국이 때 이르게 앞서간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다. - P495

11세기나 12세기 이후 유럽에서 수차를 사용하자 결정적인 진보가 일어났다. 숲속에 제철소를 대신해서 강변에 제철소가 들어섰다. 여러 번 가열한 철을 두드리는 망치 등을 수력으로 움직였다. 14세기 말에 용광로가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 P499

서구의 장점은 “아시아 대륙의 곶” 정도에 불과한 좁은 곳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세계를 필요로 했으며, 밖으로 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 P545

이것도 딱히 이유는 되어 보이지 않는다. 갇혀 있는 모두가 밖으로 나간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당시 중국과 이슬람은 오늘날 우리가 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을 가진 부유한 사회였다. 그 옆의 서구는 아직 "프롤레타리아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3세기부터 장기적인 긴장이 물질문명을 흥기시켰고 서구세계의 심리를 변형시켰다는 점이다. 역사가들이 황금에대한 갈망, 세계에 대한 갈망, 혹은 향신료에 대한 갈망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 실용적인 적용에 대한 추구가 늘 함께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인간의 노력을 경감시키고 동시에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세계를 장악하려는 의도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실제적 발견들의 축적, 그리고 에너지원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한 커다란 흥미는 유럽이 본격적으로 성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유럽의 참모습이었으며 우월성을 약속했다. - P545~547

 

사치와 궁핍을 구분하는 것은 일차적 구분에 불과하며, 단순하고, 그 자체로는 아직 충분히 정확하지 않다.
이 모든 일이 강제적인 필요의 산물만은 아니다. 인간은 달리 어쩔 수 없으므로 먹고 입고 집을 짓고 살지만, 그래도 그가 하는 것과는 다르게 먹고 입고 집을 짓고 살 수도 있다. 유행의 급변은 이것을 "통시적으로(dia-chronique)" 이야기하고, 현재와 과거의 매 순간 세계의 대립은 이것을 "공시적으로(synchronique)"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만 사물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아니라 "사물과 말"의 영역에 있다. 이때 이 "말"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의미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 - P437~438

또 하나의 화제는 ‘사치’와 ‘궁핍’이다. 부자와 빈자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도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대도시 주변에는 소도시가 존재하고 대도시 내부에서도 중심 지역과 외곽 지역이 있기 마련이다. 중심 지역에는 시청 등 관공서와 시장, 백화점 등 시설이 자리하겠지만 외곽 지역은 빈민가와 사창가 등이 자리한다.  그래서 대도시를 볼 때는 소도시를 함께 봐야 하고 그 곳에 자리한 다양한 사람들을 봐야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다. 



대도시는 그 하나만으로 측정해서는 안 된다. 대도시는 도시체제 전체 총량 속에 들어 있다. 대도시는 전체 도시체제를 활성화하고 전체 도시체제는 대도시를 규정한다. 18세기 말에 점진적인 도시화가 정착되어갔고 그것은 다음 세기에 더욱 가속화했다. 런던과 파리의 외면을 넘어서, 하나의 예술,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부터 새로운 예술,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이행했다. 4분의 3 이상이 농촌인 앙시앵 레짐의 세계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고 쇠퇴한 것이다. 한편 대도시들만이 이 새로운 질서의 정착을 확고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대도시들이 이제 나타나게 되는 산업혁명에 구경꾼으로서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런던이 아니라 맨체스터, 버밍엄, 리즈, 글래스고, 그리고 수많은 프롤레타리아 소도시들이었다. - P749



이제 1권을 읽었는데 잊어버리기 전에 2, 3권을 바로 이어서 읽을 수 있도록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