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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1

category 리뷰/책 2023. 7. 27. 10:32
여행기를 종종 읽는다. 직접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간접 경험도 제법 유익하기 때문이다. 다만 몇 년마다 개정되어 나오는 여행 가이드는 한 번 보기에는 좋지만 그 이후 다시 보면 재미도 없고 옛 정보를 보게 되는 거라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여행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엮은 여행 에세이는 좋은 선택이 된다.
 
이 책은 발간 당시 사서 앞 부분만 조금 읽고 끝을 맺지 못했었다. 여행기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역사에 관련된 인물과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당시만 해도 사전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잘 읽히지가 않았다. 이제는 읽을 만하겠다 싶었는데 마침 2권도 얼마 전 나왔기 때문에 적절한 독서 타이밍이었다.
 
중국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시인이 있고 또 그만큼 한시가 많다. 1권은 장강과 황하 길을 따른 풍광을 마주하며 역사를 이야기하고 장소에 걸맞는 한시를 소개해준다. 한시는 묵독보다는 소리내어 읽으면서 읊으면 더 그 느낌이 살아난다. 직접 그 풍경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 장소를 상상하며 한시를 읊으면 더 그 흥취에 빠질 수 있는 것 같다. 책을 읽고 유*브에 관련 영상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장강 여행에 앞서 중국의 시인 '이백', '두보', '소동파'의 연고지를 찾아간 것은 독자로서도 반가웠다. 이백의 고향 강유江油, 소동파의 고향 미산眉山, 두보가 약 5년 가까이 머물러 살았다는 성도成都 초당草堂, 이들 모두 사천성 경내에 있다. 이백은 25세가 될 때까지 강유시 청련진靑蓮鎭에 있는 집에서 살았으나 벼슬길을 찾아 나선 뒤 6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했다고 한다(고향을 내내 그리워했다고). 성도에는 두보초당杜甫草堂이 있는데 안녹산의 난을 피해 들어와 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살았던 곳이다(이 때만큼은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는지 여유로운 정취를 담은 시들이 나왔다). 미산은 소동파를 비롯하여 그의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삼소三蘇)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당나라와 송나라에서 가장 글을 잘 쓴 8사람인 '당송팔대가'에 삼부자가 모두 들어가 있으니 중국 문학의 대표 家이라 할 만하다.
 
약 6,300킬로미터의 길이로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장강은 청장고원의 탕구라산에서 발원하여 티베트, 운남, 사천, 중경, 호북, 호남, 강서, 안휘, 강소, 상해를 거쳐 동중국해로 흘러간다. 사천성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온 민강의 탁한 물과 청해성과 운남성을 굽이굽이 돌아 흘러온 금사강의 맑은 물이 서로 만나 비로소 장강이라는 이름을 얻고, 동쪽으로 수천 리 길을 흘러가는 것이다.
 
장강 여행 중 인상적이었던 두 곳만 꼽아본다면 도원과 황강의 동파적벽이다.
 
도원은 도연명(위진남북조 시인)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글에 나오는 무릉의 복사꽃 물결이 흘러내려온 근원지라는 이상향의 세계이다. 글을 읽은 사람들이 무릉군에 속한 여러 지역을 찾다가 이 글에서 묘사하는 지형과 비슷한 곳을 찾아냈는데 그곳이 호남성 상덕시常德市에 있는 도원桃源이라는 곳이었다.
 
어부가 심히 기이하게 여겨 다시 앞으로 나아가 복숭아나무숲 끝까지 가고자 했다. 숲은 물이 흘러나오는 수원지에서 끝나고 그 위로 산 하나가 솟아 있었다. 그 산에 작은 동굴이 있는데 희미하게 빛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어부는 배를 버려두고 입구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극히 좁아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어부가 다시 수십 보를 더 가니 환하게 트이고 밝아졌다. 토지는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은 가지런하고 기름진 밭과 아름다운 연못과 뽕나무 대나무 등속이 있었다. 밭길이 사방으로 통해 있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가운데 왕래하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복장이 다른 세상 사람과 같았다.
사람들이 어부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그 들어온 경유를 묻고는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술을 차려 내고 닭을 잡고 밥을 지었다.
 
동파적벽은 황강시黃岡市에 있는데 소동파가 남긴 최고의 작품 <적벽부>가 탄생한 곳이다. 황주는 소동파가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다가 옥에 갇혀 고초를 겪고 하루아침에 태수의 신분에서 미관말직으로 좌천되어 간 유배지다. 이 곳에서 소동파는 뛰어난 자연 풍광에서 쇠약해진 심신을 명상을 하며 보냈다.
 
임술년 가을 7월 16일 밤
소식이 객과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 아래에서 노닐었더라.
맑은 바람이 천천히 불어 물결이 일지 않는지라
술을 들어 객에 권하며 명월의 시를 노래하였더라.
이윽고 달이 동산 위로 떠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니
흰 이슬이 강에 자욱하게 내려 물빛이 하늘에 이어졌더라.
일엽편주를 배가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니
아득히 넓은 망경창파를 건너가는구나.
넓고 넓구나, 허공을 날아올라 바람을 타고 가는 듯
어느 곳에 멈출지 알 수가 없구나.
가볍게 나부끼는구나, 속세를 버리고 홀로 우뚝 서서
날개를 달고 선계에 오른 듯하구나.
 
<적벽부>는 <전적벽부>와 <후적벽부>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대목은 <전적벽부>의 첫 단락이다. <전적벽부> 후반에는 청풍과 명월에 대한 생각이 그려져 있다.
 
천지 사이의 모든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는 법
내 것이 아니라면 털끝만 한 것이라도 사양하겠노라.
오직 강 위에 불어가는 맑은 바람과
산 사이에 뜨는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네.
취하여도 금하는 이가 없고
쓰고 써도 다함이 없는 것이니
바로 조물주가 주신 끝없는 보배가 아닌가.
 
 
황하는 청장고원에서 발원해서 아홉 개의 성 청해, 사천, 감숙, 영하, 내몽고, 섬서, 산서, 하남, 산동까지 5,464킬로미터를 흘러 발해만으로 흘러드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중국인에게 황하는 어머니의 강으로 불린다. 황하 중하류 지역의 비옥한 땅에서 중국 문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황하는 산지 위주의 상류, 황토고원 위주의 중류, 평원과 구릉 위주의 하류로 구분되는데, 중류의 황토고원 지대를 지나면서 대량의 황토를 함유하여 누런색의 탁한 강물이 된다.
 
황하 여행에서 인상적이었던 곳을 꼽아 본다면 호구폭포壺口瀑布, 화산 동봉 하기정下棋亭이다.
 
호구폭포는 황하의 제일경으로 불리는 곳으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이며 황색 폭포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폭포는 마치 강물이 거대한 병의 좁은 주둥이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해서 병 주둥이란 뜻으로 '호구'라 붙인 것이다. 좁고 깊은 협곡으로 앞을 다투어 쏟아져 들어가는 물줄기들이 저마다 내지르는 함성으로 귀가 먹먹할 지경이라고. 황하를 묘사한 시구로 유명한 것은 이백의 <장진주> 첫 구절이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내달리듯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화산의 '화華'는 꽃이란 뜻으로 '꽃 화花'와 통하여 꽃같이 아름다운 산이란 말이다. 화산은 오악 중에서 서악으로 유명한데 오악은 수도를 중심으로 오방을 따져서 명명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화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화산은 황하와 함께 중화민족을 잉태한 성지로 여기기 때문이다. 화산은 동봉, 서봉, 남봉, 북봉, 중앙의 중봉 이렇게 다섯 주요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북봉과 서봉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하기정은 동봉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정상에는 돌로 된 작은 정자가 있고 돌판으로 만든 장기판이 조성되어 있다. 도사들이 이곳에서 장기, 바둑 등 여러 놀이를 하며 즐겼다고 한다. 그런 경치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다니 신선 놀음이 따로 없었을 것 같다. 문제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늘만이 위에 있을 뿐
어떤 산도 나란한 곳이 없구나
고개 드니 붉은 해 가깝고
고개 돌리니 흰 구름이 낮구나
 
위 시는 송나라 명재상이었던 구준이 이곳에 올라 지은 <영화산咏華山>이다. 화산을 설명하기에 이만한 시가 있을까 싶다.
 
사실 화산 이외에도 숭산, 태산 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화산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기에 주저 없이 엄지손을 들게 된다. 다만 직접 체험을 불가할 것 같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곳을 어찌 올라가겠는가. 사진으로 보는 것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중국의 지리를 따라 역사를 만나고 문학을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2부도 바로 이어서 읽으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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