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로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서 안타까움과 회한이 밀려오는 역사의 장이었다. 패왕 항우는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한신은 버림 받은 뒤 모함을 받아 여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팽월, 영포도 목이 잘려 죽는다. 그나마 장량만이 스스로 물러나 은퇴하여 신선처럼 은거했다는 것이 달랐을까. 물론 소사도 자연사하기는 했다. 자신이 맡던 업무를 조참에게 넘겨주고 주변의 칭송을 받으며 눈을 감을 수 있었으니. 지극히 정상인데 사건 사고들이 많은 시대니 더 비정상처럼 여겨지는 아이러니다. 나는 장량의 마무리가 참 멋지게 보인다. 권세를 누리며 계속 최고위에 있어도 되었을텐데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았고 그 후에는 벼슬길을 계속 사양하며 끝내 신선처럼 노닐고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힘과 권세에 의지하는 사람은 잠시나마 권력과 부귀는 얻을 수 있을 지언정 그 말로는 결국 좋지 않은 듯 싶다.
역이기(역생)는 한왕의 명에 따라 한나라에 투항을 설득하기 위해 제나라로 떠난다. 이 때 조나라에 있던 한신은 제나라를 정벌을 결심하던 차였는데 역이기의 서찰을 받고 제나라에 있는 역이기를 만난다. 한신은 역이기와 성고에서 한왕과 연합하여 초나라 정벌을 논의하려했던데 괴철이 이를 막아선다. "불가하오! 한왕은 애초에 장군에게 제나라를 빼앗으라 했으므로 그 뜻이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지금 또 역생을 파견하여 제나라에 유세하라 한 것은 틀림없이 역생이 장군의 공을 탈취하려고 벌이는 일입니다." (P.36)
한신은 고심 끝에 역생의 간청을 듣지 않았는데 제왕은 역생을 기름을 가득 채운 가마솥에 삶아 죽인다(팽살). 한신은 이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고 하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나.
패왕은 제왕이 한신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용저와 주란으로 하여금 제나라를 구원하고 한나라를 격파하라 지시를 내린다. 한신은 유수강 상류에 모래주머니를 놓아 물을 흐르지 못하게 해놓고 강 중간에 '등롱을 매달고 용저를 참하리라'(P.52)라는 나무 팻말을 세워 놓는다. 초나라 장수 용저가 등롱을 내리치자 한나라 군대는 쏟아져 나오고 유수강물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용저는 조참에게 죽고 주란은 도주한다. 한신은 주란을 추격하다 실패하였으나 제왕 전광을 사로잡았다(전횡은 도망). 이 때 한왕이 '자신과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자'라며 조서를 보낸다.
괴철은 한신에게 한나라를 배반하라고 유세한다. 삼분지계다. "두 왕의 목숨은 모두 족하에게 달려 있습니다. 양쪽의 이득을 모두 취하고 천하를 삼분하여 솔발처럼 정립하면 누구의 세력도 감히 먼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족하께서 강력한 제나라를 근거지로 삼고 연나라와 제나라를 복종시켜 백성이 바라는 바에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 백성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보호해주면 천하가 바람에 휩쓸리듯 호응할 것입니다."(P.69) 하지만 한신은 육가의 반대가 있기도 했고 스스로 주저하면서 괴철의 계책은 한신에게 쓰여지지 못한다(이후 괴철은 시장통에서 미치광이 짓을 하며 혼자서 노래를 부르거나 실없이 웃고 떠들었다).
초나라 군과 한나라 군은 형양성 근처에서 전투를 하게 되는데 이 때 패왕은 한왕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네놈과 여러 해 전투를 치렀지만 아직 직접 싸워본 적은 없다. 오늘 승부를 내자. 네놈과 내가 대적하여 자웅이 결정되면 온종일 서로 대치하며 삼군을 괴롭히지 말자." 한신이 한왕과 사이에 틈이 생기고 코너에 몰려 있는 패왕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길은 없고 지금 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때 한왕은 지지 않고 패왕의 10가지 죄를 이야기하며 패왕의 분노를 증가시킨다. 패왕의 창 끝을 피한 한왕이었으나 종리매 휘하의 궁수들의 화살은 피하지 못했다. 한왕의 가슴에 꽂힌 화살은 심장 깊숙한 곳까지 입은 부상은 아니었어도 피부가 찢어지는 등 한동안 병상에 일어나지 못한다.
패왕은 군량이 부족하고 형양성을 단시간에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광무에서의 일전을 위해 퇴각한다. 마침 한신도 한나라 군대에 합류하고 드디어 광무산에서 초나라와 한나라가 큰 전투를 벌인다.
"내일 장수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각각 방향을 알려준 뒤 약정한 시간이 되면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면서 스스로 묘책을 찾아야 하오." (P.91) 한신은 진채를 세우고 10진영으로 군대를 배치한 뒤 포성이 울리자 공격에 들어간다. 초나라 군사 5천명이 궁노수가 쏜 화살을 맞고 7, 8할이 쓰러지는 동안 주은과 환초가 패왕을 따라 포위망을 뚫으며 탈출한다. 한왕은 패왕 무리를 쫓았고 종리매가 태공을 이용하자 간언한다. 팽성에 구금되어 있던 태공을 군영으로 진작부터 데려왔던 터였다. "나는 생전에 우리 부모님을 봉양할 수 없겠구나." (P.104) 한왕은 역시나 아버지를 구조할 마음이었다. 그러나 장량과 진평은 패왕의 계략을 눈치채고 항복해서는 안 된다 간언한다.
한신은 초나라의 탈출로를 차단하고 광무산을 에워싼 뒤(태을진을 펼치고) 패왕 항우를 마침내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고대 중국의 진법은 보통 주역을 바탕으로 한다. 진법에 따라 배치된 군사들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당시 전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고 비장함과 엄정함을 느끼게 하였다.
긴 전투 끝에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한 초와 한은 홍구 회담을 통해 국경의 경계를 정하고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한왕은 약속을 위반하고 100만의 군대를 모으며 초나라와의 결전을 준비한다(한신, 영포, 팽월은 참가하지 않았다). 드디어 성고를 나선 한나라 백만 대군은 구리산 전투에서 매복 작전을 펼치며 승기를 잡는다. 해하 전투에서 한나라 군대와 초나라 군대는 크게 격돌한다. 이 때 패왕 항우의 기세는 마치 한 마리의 범을 보는 듯하였다. 그의 전투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느낌인데 1:1로 붙어서는 당연히 이기는 것이고 심지어 1:N으로 붙을 때도 결코 밀리지 않고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라니 가히 탄복할 만하였다. 책에서도 대체 몇 번이나 이런 장면들이 나오는지 세다가 포기했을 정도다. 항우의 전투력은 아무튼 최고인 걸로.
하지만 그의 마지막이 찾아오고야 말았으니... 오강에서 초나라 대군의 모습은 워낙 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나와 있어 그 모습을 가히 짐작할 만하지만 소설로 직접 보니 비장미가 더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는 무엇보다 한나라 장량의 계책이 주효한 탓이다. 남은 초나라 군사가 8천여명 정도였는데 고향을 떠나 전투에 임한지 오래 되었고 군량까지 떨어져 배도 고파서 다들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 때 장량이 초나라 군대의 기세를 꺾기 위해 그 유명한 피리 불기 작전을 결행한 것이다. 구슬픈 피리 소리와 더해진 노래는 초나라 군대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하였다. 마치 흔들리는 등불에 지속적으로 바람을 불었다고나 할까. 8천명의 군사 중 남은 군사가 8백명도 되지 않았다니 대세는 한나라로 크게 기운 셈이다.
마지막임을 직감한 패왕 항우는 우희에게 피하여 한나라에 투항할 것을 종용하지만 우희는 자결로 삶을 마감한다. 우희의 마지막을 보면서 솔직히 유방의 정부인 여후와 비교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왜? 죽을 이유는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역사적 평가는 후대의 몫이겠지만. 오강에서 오추마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며 장강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도 유명하다. 오추마가 사라질 때 그의 마음이 또 한번 무너졌을 것이다. 패왕 항우도 이곳에서 유방과의 싸움을 끝내고 스스로 삶을 끝맺는다.
한왕이 조회를 마치고 신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밀 급보가 날아든다. "한신이 초왕에 책봉된 뒤 평민의 밭을 빼앗아 부모의 묘를 썼고, 병마를 늘여 세워 고을을 소란하게 합니다. 또 초나라 패장 종리매를 숨겨 주고도 자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이는 진실로 반란을 도모하려는 것입니다. 서둘러 그자를 처리하셔야 합니다."(P.274) 한왕은 한신의 속뜻을 알아내기 위해 진평의 계책에 따라 운몽으로 순행을 가면서 지방의 민심을 살피기 위해 제후들을 회동시키고 만약 이에 오지 않는 자가 있으면 정벌하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종리매는 한신에게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자 자결하고 한신은 그의 수급으로 한왕과 교섭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의심에 가득찬 이의 눈과 귀에는 무엇도 들어오지 않는 법, 한왕은 한신을 포박해 사로잡는다. 그렇지만 한왕은 한신이 개국 공신임을 생각하여 회음후에 봉하고 돌려 보낸다. 한신은 이후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는다.
한신이 팽당한 것을 알게 된 진희는 처음에는 분노였고 이후 반란을 결심한다. 한왕은 이에 영포와 팽월에게 진희를 토벌하게 하였고 소식을 들은 한신은 구원병을 보내지 말것을 간언하는 서찰은 보낸다. "만약 두 분이 진희를 격파하고 나면 한나라 군주는 틀림없이 꼬투리를 잡아 두 분을 해칠 것이오."(P.323) 한왕은 조나라와 대나라에 진희를 토벌하러 가기 위해 원정을 나선다. 이 때 한신의 심복 사공저가 승상인 소하에게 가 몰래 고변을 한다. "진희의 장수와 군사에게 지름길로 와서 장안을 탈취하게 하고 한신 자신은 관중에서 거병하여 호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털끝만큼의 거짓도 없습니다. 소인이 술에 취해 나막을 폭로하자 한신이 소인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고변한 것입니다."(P.339) 소하 옆에는 여후도 있었다. 여후는 상의할 일이 있다며 한신을 입조하게 하고 포박당한 한신은 "괴철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이 참으로 후회된다."(P.343) 그렇게 한신은 미양궁 장락전에서 참수당하고 삼족이 멸해졌다.
한신은 한나라의 모사꾼으로 초나라와의 전쟁의 수많은 전투에서 비상한 계책으로 승리를 이끌었던 재상이었으나 말로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의 욕심이 컸던 것일까 아니면 한왕 유방의 눈과 귀가 가리워진 탓일까.
앞서 이야기했지만 괴철은 참수당한 한신의 목을 거두어 묘소를 만들어 장사를 지냈다. 팽월과 영포도 목이 잘리며 참수 당한다.
한왕 유방의 말로는 어떠했을까. 나이가 들고 병이 든 그는 "내 병은 오래 전쟁터를 전전하며 종일토록 우울한 마음을 품고 살다가 생긴 것이오."(P.414) 황후는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한왕을 진찰하게 하고 10일이면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한왕은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진료를 거부한다. 이후 유방은 더 병이 위중해졌고 태자를 불러 앞으로의 한나라를 부탁한다. 향년 63세에 한 고조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진나라 말 혼란한 시기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일어난 많은 장수들 중 하나였던 유방과 항우. 둘은 한나라와 초나라를 이끌며 한 시대를 이끌었고 대결 끝에 한나라의 시대로 접어든다. 유방이 항우에게 승리한 것은 결코 개인의 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힘만으로 따지면 유방은 항우를 결코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지혜나 계략으로는 유방이 좀 더 나았으나 비등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결국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잘 사용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한고조가 죽고 나서 들어선 황제 혜제는 여후의 힘에 밀려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초한지를 보면서 진나라 말의 혼란한 상황과 한나라로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을 스릴감 있는 전개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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