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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노생거 사원

category 리뷰/책 2022. 9. 27. 14:18

먼저 독자의 무지를 고백하고 간다. 나는 이 책을 순전히 출간순으로 생각해서 <맨스필드 파크>와 <엠마> 다음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책은 작가 28 세때 써낸 최초의 장편소설이었다. 읽고 나니 이 책이 왜 초기작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작의 이름은 「수전」이었다고 하는데 20대 때 썼지만 책은 작가 4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출간되었다. 


먼저 제목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해야겠다. 사원이라는 말이 언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전에 수도원이었던 건물이니 수도원이라고 하던지 저택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원이라는 명칭 자체가 책의 장소가 주는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이 성글고 거칠다. 그런데 그래서 놀라웠다. 왜냐! 초기 장편소설의 수준이 이렇다고? 하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두 가지 면에서 놀라웠다. 

첫 번째, 소설과 소설가를 논한 부분과 역사(책)에 대한 논쟁과 토론.

두 번째, 고딕 소설을 체화한 스토리. 심지어 그 스토리가 꽤나 내게 먹혔다. 괴기스러움과 삐걱거림. 좀 오싹하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한 감정을 이야기를 통해서 잘 풀어냈다.


새로 나오는 소설마다 쓰레기 같으니 어쩌니 하면서 신문에다 대고 케케묵은 곡조로 왈왈거리게 내버려두자. 우리끼리는 서로를 저버리지 말자. 우리는 상처 입은 몸이다. 우리의 작품들은 세상의 어떤 다른 문학기관이 내놓은 작품보다 광범위하고 가식 없는 즐거움을 주어 왔음에도, 어떤 종류의 글보다 폄하되었다. 자존심 탓이든 무지 탓이든 유행 탓이든, 우리의 적들은 우리의 독자만큼이나 많다. 

그들은 『영국의 역사』를 900번째로 요약한 사람의 능력이나 밀턴, 포프, 프라이어의 열두어 행을 《스펙테이터》의 논문 한 편과 스턴의 한 장(章)과 묶어서 출판하는 사람의 능력에는 벌 떼같이 달려들어 미화하면서, 소설가의 역량은 폄하하고 그 노고를 절하하려고 든다. 오직 천재, 위트, 감식력으로만 승부하는 그런 작업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대세를 이룬 듯 하다. 
“전 소설은 읽지 않아요……. 소설은 들여다본 적도 거의 없는걸요……. 제가 종종 소설을 읽으리라는 상상은 하지 마세요.……. 소설치고는 꽤 좋네요.” 이런 것이 판에 박힌 듯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아가씨, 뭘 읽고 있어요?”
“아이! 그냥 소설이에요!” 젊은 숙녀는 대답한다.
일부러 무관심을, 혹은 일시적인 수치심을 엿보이며 책을 내려놓으면서. “별거 아니고 『세실리아』나 『커밀라』나 『벨린다』인걸요.”
한마디로 그냥 소설 작품이라는 것인데, 실은 여기서야말로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이다.

"전 역사를 좋아해요."
“저도 좋아하고 싶어요. 역사책은 의무적으로 조금 읽었지만, 짜증 나고 죄다 지루한 이야기뿐이더군요. 페이지마다 나오느니 교황들과 왕들의 싸움이고 여기에 전쟁이나 역병이 곁들여지고요. 남자들은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여자는 보이지도 않고요. 정말 따분하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따분하다는 게 이상하단 생각도 종종 들어요. 그 대부분이 지어낸 것이 분명한데 말이에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연설이라든가, 그들의 생각이나 속셈이나…… 그 대부분이 지어낸 게 틀림없죠. 다른 책에서는 지어낸 게 재미있는데 말이에요.”
만약 당신이 불쌍한 아이들이 처음에 문자를 배우고 그다음에 철자를 배우는 소리를 저만큼 자주 들어 보신다면, 그 아이들이 아침나절 내내 얼마나 집단으로 멍청해질 수 있고 저의 가엾은 어머니가 마지막에는 얼마나 진이 빠지시는지 본 적이 있다면, 당신도 ‘고문하다’와 ‘가르치다’가 가끔은 동의어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실 거예요. 전 거의 매일 집에만 있다 보니 그런 모습을 늘 보거든요.”“그렇다고 해 두죠. 그러나 읽기를 배우는 어려움을 역사가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요. 그리고 당신 자신부터가 평생 동안 책을 읽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 이삼 년 정도는 고문을 당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지도 모르잖아요. 보아하니 아주 심하게 빡빡한 공부에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또 하나 추가한다면 이것은 제인 오스틴 소설에 매번 등장하는 것 같은 그녀의 지적 수준이다. 작가가 드러내는 글은 작가의 지적 능력을 고스란히 보이게 된다. 이 소설도 역시나 그런 면모를 내보여주고 있다. 주로 고딕 소설을 쓴 작가와 책 제목이 여러 번 나열된다. 당시 고딕 소설이 꽤 많이 유행했구나 하는 생각을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다. 휴머니스트에서 세계문학 시리즈로 올해 초 고딕 소설류들을 펴냈던 것이 기억났다.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는데 작가의 묘사력을 보니 충분히 읽어볼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헨리 틸니에 대한 열정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리고 대체로 성과 사원들은 그의 모습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몽상의 매력을 선사했다. 고성의 누벽과 성채, 혹은 사원의 회랑을 둘러보는 일은 여러 주 동안 소중히 품어 온 소망이었다. 한 시간 정도 관광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족할 판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저택의 이름이야 하우스, 홀, 플레이스, 파크, 코트, 코티지 등등 어떤 것으로 불려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노생거는 다른 무엇이 아닌 사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머물게 될 터였다. 길고 음습한 통로들, 좁은 방들과 폐허가 된 예배당을 날마다 접할 수 있을 터였다. 무언가 전통적인 전설들, 상처 입고 불행해진 수녀의 참혹한 사연 같은 것들을 접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완전히 접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집안사람들이 잠들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터. 그리고 틸니 부인이 아직 살아 있고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갇혀 지내면서 남편의 무자비한 손으로 밤마다 조악한 음식을 공급받으며 지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왔다. 너무나 충격적인 발상이긴 했지만, 적어도 부당하게 급사한 것보다는 나았다. 사태가 순리대로 진행되면 머지않아 풀려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병, 그런데도 바로 그 시기에 딸이 없었고 다른 자식들도 없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니…….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그녀가 유폐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 기원은.... 아마도 질투였겠지. 아니면 까닭 없는 잔인함이든가……. 아직은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마지막의 결말이 약간 용두사미 같달까. 급하게 끝내려고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특성 답게 해피엔딩으로 정리하려는데 좀 더 매끄럽게 시간을 들였다면 독자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설득력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포장하는데 기술이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첫 번째 장편 소설을 이렇게 그려낸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지 제인 오스틴 천재 맞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어내는 것도 버거운 사람이라 한 편의 서사를 써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상상력과 현실을 적절히 버무리면서 그것을 글발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소설에 대한 내용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 부분은 주인공인 캐서린이 무도회에 진출하여 사람들을 사귀게 되는 과정. 그리고 뒷 부분은 노생거 사원에 가서 겪게 되는 일이다. 앞 부분과 뒷 부분의 내용이 명확히 구분되어 사실상 두 부분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첫 번째 파트는 제인 오스틴 하면 떠오르는 무도회에서 남녀가 만나 춤을 추고 눈이 맞거나 친구를 사귀는 내용이 나오는 반면 두 번째 파트는 사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인데 환상과 현실의 버무림이랄까. 꿈 속을 헤매다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덧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제인 오스틴의 장편 소설을 4번째로 읽게 되는 것이 되었다. 읽다 보니 처음에 느꼈던 밋밋함이 서서히 호기심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슷한 듯 보이는 19세기 영국 여성의 이야기임에도 스토리, 공간, 인물에 대한 묘사를 통해 다름이 느껴지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예를 들면 바로 이전에 읽은 <맨스필드 파크>와 이 책은 정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노생거 사원>은 인물 관계도가 복잡하지 않고 스토리도 간결하다. 그에 비해 <맨스필드파크>는 이야기의 호흡도 긴 편이고 인물 관계도 복잡하다. 내 생각에는 <맨스필드 파크>가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는 생각이지만 캐릭터 싸움에서는 사실 누가 승리할지 모르겠다. <노생거 사원>의 주인공 캐서린이 내게는 좀 더 시원시원한 느낌이었다. 과도하게 몰입한다는 단점 빼고는 자기 주장도 강하고 여리여리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에 반해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내겐 많이 답답했다. 수동적이고 상처를 잘 받고 감정이 풍부하고 섬세해서 툭 하면 터질 것 같은 예민함이 내겐 부담스러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평가다. 역시 소설은 직접 읽어봐야 경험할 수 있는 것.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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