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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에 여성으로 살면서 '마녀'라는 말과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에 익숙하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낳게 한다.

 

그렇다면 마녀의 기원은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궁금해진다. 예전에 <여성괴물>을 읽을 때였나 아니면 어떤 다른 책일 수도 있겠지만 그 기원은 꽤나 오래되었다. 16세~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종교와 가부장적 사회의 결합이 원인이었다고 기억된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마녀의 기원, 역사를 설명하고 오늘날을 진단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반성했다. 

 

'마녀'에 대한 박해가 가부장 권력의 표현의 일환으로 행해진 점은 원래도 이해하고 있었으나 이것을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와 연결시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에서 여성은 소외적인 존재였다(이는 여성 뿐 아니라 장애인,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 

그런 여성을 평가 절하하는 방식의 기제로 자본주의가 작용했고 무엇보다 마녀사냥이 식민주의 국가의 경로를 따라 확대되었다고 논지를 전개한 것에서 저자의 탁월함을 느꼈다.

과거에 식민주의를 경험했던 국가였던 제3세계 여성들은 기존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는 것 뿐 아니라 식민주의, 현재의 자본주의와도 갈등이 맞물리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1부에서는 자본주의와 유럽의 마녀사냥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2부에서는 오늘날의 마녀사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페데리치의 핵심 주장이 담긴 <캘리번과 마녀>을 읽기 전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책이어서 '좀 궁금한데?'하면 정리한다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그러니까 맛보기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깊은 내용은 <캘리번과 마녀>를 읽으시길. 

대부분의 마녀사냥 역사가는 가장 정치적 직관이 탁월한 학자들인 경우조차도 사회학적 분석에 머무르면서 ‘마녀들은 누구였는가? 기소된 죄목은 무엇이었는가? 어디에서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같은 질문들을 고찰했다. 또는 의료 전문직의 탄생, 기계론적 세계관의 발전, 가부장적 국가 구조의 도래 같은 주제들에 국한된 마녀사냥 분석을 전개했다. 그러나 노예무역과 ‘신세계‘ 토착민의 박멸과 마찬가지로 마녀사냥이,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부상하는 길을 열어젖힌 다양한 사회적 과정의 교차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은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 P35


인클로저 개념은 토지 매·독점, 소작료 폭증, 새로운 과세 명목 등을 아우른다. 인클로저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폭력적 과정이었음은 분명하다. 호혜적 유대가 특징이었던 공동체들은 극심한 양극화를 겪게 되었다. 토지 귀족뿐만 아니라 부유한 농민도 담장 두르기를 했고, 적개심이 커졌다. 서로가 가까이 살았고 보복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 P42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과 및 아메리카 선주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는 이유는 자본이 이 세계의 자연자원과 인간노동에 대한 압도적인 통제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재식민화 과정이 ‘지구화‘이며, 지구화는 자기 공동체의 재생산을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을 공격하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상업모험기업의 거점이 되고 있고 반식민주의 투쟁이 가장 강력하게 벌어져 온 지역들(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 더욱 극심해졌다.여성에 대한 야만적 행위는 ‘신 인클로저‘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 P97


어떤 페미니스트는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이 여성들의 안전을 더욱 보장하거나, 아프리카의 농촌에서 종종 마녀사냥이나 여러 형태의 무력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어 온 토지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환상이다. 그 이유는 세계은행과 미국국제개발청이나 영국 정부 같은 다른 개발업자들이 추진하는 토지법 개정은 외국 투자자들에게만 이익을 주고 농촌에는 더 많은 부채, 더 많은 토지 양도, 그리고 빼앗긴자들끼리의 더 많은 분쟁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대신해서 필요한 것은 토지와 다른 공동의 자원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새로운 공동체주의의 형태들이다. 여성이 자식이 없더라도,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들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서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더라도, 또는 남편이 죽고 보호해줄 남자 후손이 없더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공동체주의의 형태들이 필요한것이다. - P15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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