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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

category 리뷰/책 2026. 5. 8. 16:36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권은 주제별 역사 중 이념과 제도, 종교와 과학, 사회/경제, 여성의 지위를 다룬다. 1권이 주로 몽골이 통일 제국을 형성했다가 분열한 이후의 역사를 정치에 집중해서 다루었다면 2권에서 이를 좀 더 주제별로 더 깊게 들여다보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나는 상위 챕터의 묵직한 주제만큼 여성의 지위를 동등하게 챕터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몽골 제국의 여성에 대해 다룰 비중이 크다 여겼기 때문이리라.

몽골 제국은 통일 제국에서도, 4개의 칸국으로 나뉘어진 제국에서도 기본적으로 같은 정치 구조 및 통치 제도를 유지했다. 몽골은 가족 및 가축과 함께 이동하는 텐트 복합체인 오르도를 운영했다. 어느 한 곳을 근거지로 정주하며 제국을 운영하는 경우가 익숙하지만 유목민은 보통 움직이며 생활하는 데다가 몽골은 통일되는 과정, 그 이후의 과정도 정복의 연속이었으므로 대상지 근처에 오르도를 옮겨 다니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우구데이 때 수도인 카라코룸을 건설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오르도 방식의 궁정은 계속되었다. 정복지에는 행정업무와 세입징수를 담당하는 ‘다루가치‘, 법적 문제를 판결하는 ‘자루가치‘를 배치하여 통치의 효율성을 높였다. 칸은 야를릭(칙령)과 우게(영지/명령)등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역참 제도(칭기스칸 이후 계속되어 뭉케 때 확장됨)를 운영하여 제국의 각 지역에 사신과 물품 운반을 이동하게 하였다.
통일제국 시기의 몽골군은 알긴치 (alginchi, 복수형은 alginchin)와 탐마, 정규군, 비유목민 군대, 카라울(qara‘ul) 혹은 카라굴(qaraghul), 케식 등 다섯 개의 주요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알긴치와 탐마는 변경과 불안정한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였다. 정규군은, 예상되는 바대로 침략과 정복을 위한 군대였고 유목민으로 구성됐다. 비유목민 군대는 비슷한 형태의 부대로 편성되었다. ˝카라울 혹은 카라굴은 ˝국경 수비대와 도로 순찰대 역할을 결합한 것으로 주력 부대의 일부로 기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케식, 즉 칸의 친위대는 군주의 개인 경호뿐 아니라 다른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통일 제국의 해체 이후에도 전체적인 구조는 유사하게 유지됐다. 알긴치, 카라울, 케식 부대가 그대로 존재했으며 비유목민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탐마는 몽골의 정복 활동이 줄어들면서 쇠퇴했을수 있지만 군대의 핵심 요소는 계속해서 기마궁사였다. 해군을 운영한 것은 대원 울루스가 유일한데 이는 고려의 우수한 선박과 항해술의 기반이 있기에 가능했다.

어느 국가든 국민을 통합시키기 위해서 통치 이념을 만들기를 추구한다. 몽골은 ‘영원한 하늘‘이라는 ‘텡그리‘의 힘을 받들어 믿게 하여 타 종교와는 다른 믿음의 영역으로 구분시켰다. 하늘은 제왕(칸)의 힘과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는 데 제격이었던 것이다. 이는 과거 한반도의 왕조도 마찬가지였다.
몽골인들의 이념적 메시지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신화, 종교적 신념, 정치적 원칙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광범위한 지리적 범위를 가진 실제현상이었으므로, 세부 사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민족들에게 인식되고 이해될 수 있었다. 즉, 다른 전근대 제국과 마찬가지로 몽골이 건설한 제국은 헌신적인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핵심 집단, 열정적이면서도 계산적인 합류자들로 이루어진 훨씬 더 큰 집단, 그리고 신들의 헤아릴 수없는 계획과 정복자들의 뛰어난 행운에 대개 어쩔 수 없이 복종한 수많은 신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P102).
몽골은 타 종교에 대해서 대체로 상대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관용성을 보였기에 다양한 종교 간 상호작용이 활발했다(물론 무슬림으로 개종한 칸의 경우 종종 이슬람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 대해서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비단 종교에서 그치지 않고 과학 및 기술에도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본다면 과학, 예술 분야가 아닐까. 이는 실용성을 중요시했던 몽골인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덕분에 의학, 천문학, 점성술 등 서아시아와 중국의 지식이 교류되어 다양한 결과가 축적될 수 있었다.

산업화 이전(더 구체적으로, 은행 제도 확산 이전)의 화폐 체계는 하위 수준(지역 내) 시장과 상위 수준(지역간) 시장의 교환 수단이 별도로 구성돼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두 체계는 근거리와 원거리 교역의 규모, 빈도, 계절성의 상당한 차이로 인해 별도로 작동했다. 몽골 정권은 하위 시장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제국 전역의 공납 이동과 도량형 체계 통일을 결합원거리 교역에서의 화폐 통용성을 구축했고, 그 결과 전체 교역시스템에서 일련의 글로벌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 P155
은이 세계 공통 화폐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후반부터였다. 고대 시기에는 물물 교환으로 교역이 이루어졌다면 그 이후에는 화폐가 쓰였겠지만 그마저도 공통 기준은 없었다. 은이 쓰였다고 해서 모두 동전 형태의 은화가 쓰인 것은 아니고 은괴, 은화, 동전의 3층 구조로 이루어졌다. 이무렵 세계 각지에서 은광이 발굴되고 유라시아가 교역로로 연결됨으로써 가능해진 일이다.
몽골인들과 그들의 제국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종교가 실천되는 방식과 장소뿐만 아니라, 인간 활동의 더 넓은 틀 안에서 종교가 이해되는 방식도 영구적으로 바꿔놓았다. 전자의 예는 이슬람 세계를 보면 충분한데, 그곳에서 아바스 칼리프조의 파괴와 그에 이은 몽골인들의 이슬람 개종은 수피즘의 부상뿐만 아니라 시아파 정치 권력이 부상하는 길을 열었다˝ 이 두 가지 발전은 근대 초기 이슬람 세계의 역사를 크게 변화시켰으며, 그 파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몽골인들은 유럽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열었으며, 이는 초기 근대 세계의 형성과 창조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 - P240
금속공예, 도자기, 건축, 직물, 필사본 삽화 등에서 유라시아 전역의 기술과 양식이 혼합 및 전파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원 지역의 문화에 티베트 불교/이슬람/기독교(천주교, 정교회 등) 양식이 더해졌을테니 상상해보면 다채로운 문화 양식이 공존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몽골 황실에서는 여성들이 때때로 주도적인 활약을 하였다. 칸의 지위를 둘러싼 갈등과 이해 충돌이 자주 발생하였기 때문에 칸이 공석일 때 황실의 여인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 경제적으로 황실 여성들은 칸과 마찬가지로 쿠릴타이에 참석하고 정치적 조언을 했으며 독자적인 영지를 관리하면서 칙령을 내릴 권한을 가졌다. 또 사회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후원하고 빈곤층을 구제하며 남편을 대신해 권위를 행사하거나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씨족, 부족 간 전략적 혼인을 통해 형성된 가족 관계는 남성들 사이의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몽골 제국 통치하에서 칭기스 가문의 여성과 혼인하는 영예를 얻은 남성은 황제의 구레겐(giüregen, 부마)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부마들은 통치자와의 긴밀한 사적 관계, 자신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더 큰 부대를 지휘하는 군사적 특권, 그리고 이후 다시 자신의 자녀를 황실 가문과 혼인시킬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혜택을 누렸다. - P384
고려 시기 원 황실과의 정략적 혼인을 통해 고려 왕이 동시에 몽골의 부마가 되는 예를 떠올리면 된다. 부마 뿐 아니라 원의 마지막 황후였던 기황후는 고려 출신으로 원의 조정을 장악하기도 했다.

다만 몽골 시기 이후 여성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않나 한다. 이전인 중국 당대(618~907)의 시각 및 문헌 자료들은 상류층 여성을 말을 타고 폴로를 즐기는 풍만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반면, 송대(960~1279)의 자료들은 날씬하고 심지어 연약해 보이는 신체를 강조한다. 중국에서 말타기는 여성과 완전히 무관하고, 심지어 남성들에게도 드문 일이 됐는데, 이는 금과 몽골의 침입으로 북방의 말 사육지가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상류층 가문에서는 아내와 딸의 생활 공간을 분리하는 게 규범이 됐다. 비상류층 여성들은 상황에 따라 농사, 가게 운영 등을 맡기도 했지만, 이후 수세기 동안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경우는 훨씬 줄어들었다. 송대에는 전족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족의 기원은 여전히 불분명하며 지역마다 다소 달랐지만, 문헌 증거와 고고학 증거 모두 12세기에 자리 잡기 시작해 상류층에서 모든 계층의 한인 여성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음을 보여준다(하카, 위구르, 만주, 그리고 다른 소수 민족들은 수 세기 동안 전족을 하지 않았다)(P416~417). 송대 이후로 강화된 유교 규범 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몽골의 점령은 중국의 혼인법에도 장기적 영향을 미쳤다. 1271년 쿠빌라이 카안은 모든 민족 집단에 대해 몽골의 수계혼 관행을 합법화했고, 치열한 법적 다툼과 소송의 홍수 속에서 과부의 정절은 중국 여성들이 수계혼에 저항할 수 있는 법적 수단으로 부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계혼은 중국에서 불법이 됐고, 과부의 정절을 지지하는 법들은 중국의 왕조 시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P417).

앞선 1권이 전체적인 몽골 역사의 훓어보기 성격이라면 2권은 주제별로 정리해놓았기에 관련 분야를 찾고 싶을 때 참고하기 좋을 것 같다. 다만 저자마다 편차가 있어서 글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이는 최대한 일반 독자를 위해 더 깊은 이해 수준을 위한 내용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기술해서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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