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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근대 용어의 탄생

category 리뷰/책 2024. 4. 1. 11:40
근대 용어의 탄생
민주주의, 경쟁, 비즈니스, 진보, 혁명, 대학··· 우리가 쓰는 용어들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도착했는가? 지성사, 문학사, 사료를 통해 탐사·수집한 근대 용어의 계보 역사를 건너뛴 채 진리를 말하지 않는 비코식 탐구의 이정표
저자
윤혜준
출판
교유서가
출판일
2024.01.05

‘근대’는 학자들이 때로는 ‘근대성’이라 부르는 대상, 즉 근대적 의식, 담론, 사상 등과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근대’는 ‘담론’이기도 하지만 시대와 공간이기도 하다. - P7

이 책은 근대 문명의 키워드가 된 ‘말’의 역사를 다룬다. business, constitution, democracy, president, project, revolution, university… 현대에도 사용되는 이 말들의 기원이 되는 단어는 무엇이고, 이후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의미로 변화되었는지를 들여다본다. 한 마디로 말의 유래를 살피고 그 변화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말의 탄생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차례도 알파벳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America’는 첫 챕터이기도 하면서 우리와도 관련이 깊어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America’는 청나라 시절 아메리카’에 대한 중국어 소리 ‘메이’를 표현한 글자로 한자, 아름다울 미를 써서 ‘미국’이 되었다. ‘아메리카’는 피렌체 공화국 지도자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함선을 타고 신대륙을 향해 갔으나 독일어 지리학 연구자인 발트제뮐러가 세계전도에 그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메리카’가 아닌 다른 이름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자본주의’는 ‘capitalism’의 번역어다. 원어는 라틴어 ‘capitals’인데 머리를 뜻하는 ‘caput’에서 따 왔다. 지금의 ‘자본’이라는 의미는 원래 ‘stock’을 주로 쓰다가 1880년 이후 경제사회체제 개념으로 ‘capitalism’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이것이 사회주의에 대응하는 정치적 용어로도 확장되었다.
이처럼 키워드의 의미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번역어와 영어의 의미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경쟁competition’도 라틴어 어원으로는 ‘함께 노력하다’라는 의미였는데 이것이 ‘다툼이나 경쟁’으로 변화한 것이다.
통화로 쓰이는 ‘currency’의 한자어의 부수는 책받침 부수로 ‘쉬엄쉬엄 간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 ‘currency’는 ‘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currency’는 18세기 이후 화폐 경제에 의한 경제 활동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지금의 돈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영어 ‘revolution’이나 프랑스어 ‘revolution’은 원래 어원적 의미만 따지면 획기적인 정치적 격변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라틴어 어원 ‘revolutus’를 그대로 따른다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는 뜻이다. 앞으로 ‘전진’하는 혁명과는 오히려 정반대다.
‘industry’는 원래 ‘근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가 기계 산업 시대 이후가 되면서 지금의 ‘산업’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reform’은 ‘되돌리다’라는 의미로 종교 개혁 시기에 ‘과거로 되돌리다’라는 의미로 변화했다가 현재의 ‘(사회 경제적인) 개혁’이라는 의미로까지 변했으니 상전벽해가 된 경우다.
물론 ‘소비consumption’은 ‘다 가져가다’로 애초부터 지금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도 쓰인 경우도 있다.
또, 번역어 ‘프로젝트’, ‘리뷰’, ‘유토피아’ 등은 이제 완전히 우리말처럼 되어 버린 경우도 있어 흥미로웠다.

대부분은 기원어가 라틴어가 많았는데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리스가 기원이라는 점도 주목이 되었다. 기원어의 의미는 ‘평민, 인민에 의한 지배, 통치’로 직접 민주정을 가리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되면 알렉시 드 토크빌이 주장한 기회의 평등, 지성의 평준화에 의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의미로 보편화된다.

키워드와 내용을 확인하면서 눈에 머무는 것이 있다면 관심이 가는 주제일 것이다. ‘헌법constitution’도 그런 경우다. 영국이 헌법에서 말한 바와 달리 그들은 식민지를 만들고 노예를 부리며 그들의 인격을 강탈했다. 워런 헤이스팅스의 말에 분노하며 도자기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저 문구를 보니 더 착잡함이 일 수 밖에 없었다.

에드먼드 버크가 워런 헤이스팅스를 기소하는 연설에서 ‘constitution’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워런 헤이스팅스는 탄핵 재판장에서 자신이 통치한 인도 지역의 토착 ‘constitution’이란 원래 다수의 민중을 소수의 지배자가 “저급하고 미천한” 상태에 머물도록 억압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반면 에드먼드 버크는 고유의 억압적인 정치문화가 아니라 영국인 지배자 워런 헤이스팅스가 주도한 “부패”가 “그 나라헌정질서의 모든 이득을 상실하게 한 진정한 원인”이라고 단언했다.

18세기 내내 북아메리카 및 서인도제도(카리브해) 영국 식민지에 아프리카인 노예들을 파는 노예무역은 영국의 중요한 ‘기간산업’ 중 하나였다.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하던 시기인 1780년대 후반에는 온갖 사업자와 투자자가 관여하던 영국의 노예무역을 법으로 금지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의회 안팎에서 터져나왔다. - P67~68


웨지우드 도자기 회사에서 만든 ‘폐지론자’ 메달에 새겨진 메시지는 “나도 사람이고 (당신의) 형제 아닌가요?”다.


노예무역 페지론자들 중 한 명인 토머스 쿠퍼는 ‘consumption’이란 말속에 인간 생명의 ‘소모’와 설탕의 ‘소비’를 다음과 같이 연결하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900만 명의 노예가 유럽인들에 의해 소비되었다. 이러한 통계도 이미 한 10년 전 것이므로 한 100만 명은 더 추가해야 한다. 노예 하나를 포획하기 위해 열 명씩은 살육해야 한다는 계산을 해보면 그렇다. 그중에서 5분의 1은 배에 실려오는 도중에 죽고, 3분의 1은 농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죽는다는 점을 감안하자. 전혀 과장하지 않은 계산을 해보아도 유럽인들의 탐욕이 보여주는 악마적인 게걸스러움은 무려 1800만 명의 우리와 같은 동료 인간에 대한 살인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 맙소사, 그들은 도대체 무슨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가? 깜짝 놀란 독자는 이렇게 말할 법하다. “유럽의 신사 양반들이 마시는 차에 설탕을 타기 위해서!” 독자에게 해줄 답은 이것이다. - P84

‘계몽’이라는 단어에서도 비슷한 감상을 받았다. ‘빛’에서 기원한 이 개념은 점차 서구중심주의의 문명사적 개념’으로, 시대 정신이자 사상으로 확장되었으나 과연 그들만이 문명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계몽’은 이전의 ‘가르침, 훈육’에 의미에서 이제는 너무 변질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메이지 시기 일본에 의해 번역된 ‘president’의 대응어인 대통령’도 의미가 너무 변질된 경우다. 미국의 정치 체제의 의장에서 온 것으로 ‘위임 받은 권위를 행사하는 대리자’라는 의미가 대한민국에서는 ‘권력자’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삼권 분립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이처럼 이 책은 역사의 흐름에서 근대 문명의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로 번역한 말은 ‘-ism’으로 끝나지 않는데도 그렇게 번역되고 고착되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demokratia’에 부여한 기능은 무슨 ‘-주의’가 아니라 특정 유형의 정치 체제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원리와 본질을 중시하던 플라톤이었지만 그가 법률에서 ‘demokratia’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발언은 ‘-주의’와는 관련성이 적다.
정치 체제에는 두 개의 모형이 있고 나머지는 다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이 둘 중 하나는 왕정이고, 다른 하나는 공화정(demokratia)이지요. 전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페르시아의 정치 체제고, 후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아테네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이 둘을 조정하고 배합한 것일 뿐이지요. 어떠한 체제 속에서 자유와 박애를 지혜와 배합하려면 이 둘 중 하나의 형태를 채택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 P101

‘계몽’이 형용사englighten로 ‘교육받은, 지식인의, 문명화된’으로 주로 쓰이던 18세기가 지나고 19세기가 된 이후로 시대정신이나 사상을 지칭하는 칸트식의 용례가 영국에서도 ‘계몽시대’ 같은 표현에 종종 등장한다. 이 단어가 이러한 뜻으로 사용될 경우 단어의 머리글자 ‘E’를 대문자로 구별했다. 대문자로 시작하는 일종의 고유명사가 된 ‘Enlightenment’를 ‘계몽주의’로 옮기지 않을 이유는 물론 전혀 없다.
‘계몽주의’를 이어받은 과학기술문명은 “가장 무지하고 야만적인 시대”와 “잔혹함과 부당함”을 놓고 여전히 경쟁했다. 종교적 양심의 ‘계몽’에서 해방된 근대과학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위해 이성의 힘”을 숭상하는 ‘계몽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에 권력욕 및 “저급한 탐욕”과 결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P130~131

미국 헌법이 규정한 ‘아메리카의 주 연합 의장’을 ‘미합중국 대통령’이라 부르는 순간 삼권분립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온갖 거추장스러운 제약과 견제 장치들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러한 오역의 과정을 거쳐 통용되는 ‘대통령’이라는 말에는 ‘대권’을 휘두르는 권력자의 모습이 중첩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 P200

“합리적인reasonable” 사람이라면 “쓸모없는” 질문에 매달리지 않는다. 삶의 유익한 바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존 톨런드가 인정하는 ‘합리성’의 내용이기에 존 로크가 말하는 ‘reasonableness’와 유사하다.
‘합리적 의심’은 윌리엄 블랙스톤, 에드워드 쿡 경, 존 로크, 존 톨런드가 이해한 신축적인 실천성과 실무적 감각을 법정에 적용한 법 원칙이다. 그러한 ‘합리성’은 상식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다. 한 피고인의 권리와 심지어 생명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형사 판결을 비전문가 일반 시민들의 상식에 근거한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배심원 재판이다. 법률 전문가들의 뒤틀린 말장난과 정치판의 편싸움에 끼어드는 기괴한 논리에 따라 사법 정의가 왜곡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대한민국에서 이 표현이 나온 배경을 충분히 이해할 자세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법하다.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