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그림자를 판 사나이

category 일상다반사/책 이야기 2013. 6. 26. 22:45


미경과 정식은 결혼한 사이이다. 미경과 스테파노, 바오로는 친구 사이로 알고 지냈다.

미경은 사실 바오로를 좋아했지만 그가 신부가 되면서 마음을 접고 마음에도 없는 정식과 결혼하게 되었다.

뭐 사실 진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정식의 남편이 탄 차가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며 정식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미경은 이럴 줄 알았으면 정식에게 잘해줄 걸 후회한다.

어차피 바오로는 미경에게 다가설 수 없으니 스테파노는 미경과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경에게 이런 친구들이 남아 있어서 어쩌면 나았던 것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공감을 샀던 부분은

털어놓아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부러워한다는 스테파노의 말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비밀을 말할 누군가 있다는 것은 그 비밀을 공유해도 될 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는 이갸기이고

그들은 서로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빛이든 어둠이든 드리우게 될 테니 그것을 부러워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어릴 적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하기 전 그가 나의 말을 귀 기울여주었으면 했던 적이 있고 그의 비밀을 내가 알았으면 하는 욕심이 마구 샘솟을 때가 있었다. 

서로에게 기댄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비밀을 털어놓을 사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털어놓아야 할 뭔가가 있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에겐 누군가의 영혼에 어둠을 드리울 그 무언가가 없었다.

- 154p


정식이 죽은 뒤 미경이를 위로하던 스테파노는 미경이와 살아볼까 생각한다.

그녀와 있으면 남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누군가와 옥닥복닥 부대끼며 지내다보면, 어쩌면 내게도 그림자가 생길지 모른다.

그렇게 멋진 그림자가 생기면 사제관으로 불쑥 찾아가 얄밉도록 잘생긴 바오로 신부의 뒤통수를 한대 툭 치며 내 아이의 영세를 부탁하게 될 지도 모른다. 멋진 세례명 하나 지어줘. 바오로 같은 거 말고. 

일 년에 한 번은 정식의 제사도 지내주리라. 자식도 없이 죽은 녀석이 아닌가. 

그 생각을 하는 사이 거대한 새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하늘을 본다. 이상하다. 달도 없는 밤에 웬 새 그림자. 몸이 다시 움츠러든다.

- 161p


과연 스테파노의 결심처럼 미경이와 둘은 복작복작 지금도 서로에게 기댄 채 살고 있으려나?

'일상다반사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의미  (0) 2013.06.26
너를 사랑하고도  (0) 2013.06.26
보물선  (0) 2013.06.24
이사  (0) 2013.06.21
오빠가 돌아왔다.  (0) 201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