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습작일지

너 자신을 알라

거리의 화가 2010.10.02 08:44
언젠가였던가.

아마 2~3달 쯤 전이었을게다.

난 아침마다 회사 출근하자마자 영어공부를 했다.
토익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아침마다 방송을 하고 팀원들끼리 조회를 한다.
하지만 우리 팀은 사람 수가 적어지면서 
외근 등이 잦아져 이제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집중 업무 시간은 어차피 오전9시부터 11시.
그렇기에 8시부터 9시까지는 남들도 으레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동료와의 대화, 휴식 등으로 보내는 시간이다.

그런데 나보다 팀에 먼저 들어왔을 뿐이지 같은 직급인 동료가 어느 날 말하는 것이다.
"~~~는 업무 시간에 왜 다른 것을 하세요?"

'그러는 자기는~'
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맨날 쇼핑하거나 뉴스 사이트 보면서 노는 사람이 
자기는 어떤지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누워서 침뱉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기간에 동료에게 일이 몰려 예민해지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것을 동료에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로 행동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만하면 난 화를 절대 내지 않는 사람이지만
회사 들어와서 처음으로 동료에게 언성을 높였다.
난 기준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넘어가는 편인데 이건 좀 지나치다 싶었다.

그 동료 자체가 믿음이 가는 사람이 아니었거든.
같이 일하긴 하지만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 않은가.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자기는 맨날 근무시간에 쇼핑하고 뉴스 사이트 보는게 일이었으면서
그 즈음 좀 일한다고 뻐기는 것이 어찌나 꼴사나웠던지.


시간이 흘러 2~3개월이 지나고 이제 여유가 생기니
다시 또 똑같이 쇼핑하고 뉴스 사이트 보며 놀고 있다.
참 한심스럽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 많으면서 왜 저러고 사나 싶다.
나이가 많으면 무엇인가 배울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상사니까 내 말을 들어요!"

상사 대접을 받고 싶으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지
그게 무슨 상사인가. 사원보다도 못한 행동을 하면서 말이다.

'니가 뭐라고...'

더 이상은 욕이 나올 것 같아서 그만 둘란다.
실력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던가. 
열심히라도 하던가. 이건 뭐...


이런 팀원하고 일한다는 것이 창피하고 우습기만 하다.

'습작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원이의 결혼식  (0) 2010.10.04
감정을 절제하기  (0) 2010.10.02
너 자신을 알라  (1) 2010.10.02
아픔이 지나고 나서야  (0) 2010.10.02
최악의 컨디션  (0) 2010.10.02
꺼진 불도 다시 보자  (0) 2010.09.29
댓글
  • 프로필사진 BlogIcon 지성의 전당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크라테스 명언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www.uec2018.com
    2018.09.07 19:27 신고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