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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한계년사 5권

category 리뷰/책 2021. 12. 31. 22:48

5권에서는 어떤 모임도 경계하려는 고종, 기득권의 자기 밥그릇 싸움이 나온다. 후반부에는 청나라 의화단 운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소개된다. 
만주족의 기원과 청나라의 성립, 그리고 의화단 운동의 배경에 이르기까지 긴 분량을 다루고 있다.


4권에서 독립협회 핵심 세력이 구속되고 해체되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결말을 맞았다. 

독립협회를 끌어내린 고종과 수구세력(황국협회 보부상)은 이후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회마저 탄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대체 왜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었단 말인가.

당시 민회 회원은 체포와 암살을 두려워하여 미국 및 일본인 집에 많이 숨어 행방을 감추었다. 이때 거리에서는 정부가 은밀히 자객 30여 명을 보내, 민회 회원을 죽이려 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한 사람이 깜깜한 밤 큰 거리에서 몰래 들으니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들이 어찌 은화 몇 닢의 이익 때문에 차마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민회 회원을 해치겠는가." 하면서 서로 오랫동안 탄식했다고 한다. - 31p 민회 회원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몸을 보호하는 도구로 모두 권총과 몽둥이 칼을 지니고 있었지만 밤에는 잠을 깊이 들 수 없었다. - 47p


그 와중에도 서울에는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외국과의 우편 업무가 시작되었다.
개화의 바람으로 훈풍을 지속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 찬물을 끼얹는 세력은 어김없이 존재했다.

등짐장수란 이름이 나라 안에 가득 차고 퍼져, 위로는 벼슬아치와 선비로부터 아래로는 염치없는 종부치와 천한 무리에 이르기까지 다투어 상무사에 투신했다. 무리를 지어 재빨리 상무사로 달려가 한패거리가 되어 서로를 비호하면서 온 나라와 백성들에게 끼친 폐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 71p

그리고 1899년 8월 대한국 국제가 반포된다.
1조와 2조의 내용이 눈에 띄는데 1조는 대한제국은 자주독립국이라는 내용이고 2조는 전제정치에 대한 내용이다. 

- 대한국 국제를 정하다. 8월 17일 지시하였다. 같은 날 법규교정소 총재 윤용선, 의정관 서정순 등이 나라의 제도 9조를 아뢰었다. 제1조, 대한국은 세계의 온 나라가 공인하는 자주독립의 제국이다.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과거 500년간 전해 내려왔고, 향후 영원히 내려가도 변치 않을 전제 정치이다. ... -73p

이 부분을 볼 때마다 시대를 역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국은 좋다. 근데 왜 전제정치일 수밖에 없었는가. 
민의는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립협회 등의 단체가 생기고 국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명이 쇠퇴하고 청이 흥기하는 과정 속에서 조선은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대세는 청으로 기울었음에도 군대를 파견하라는 청의 요구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뒤로는 재조지은이라는 명목 하에 명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상헌, 임경업 등은 명에 신의를 지켜야 한다며 끝내 청에 무릎꿇지 않는다. 
효종은 송시열을 등용하고 청을 정벌하려는 계획을 호시탐탐 노린다. 하지만 성공 확률이100%가 아닌 상황에서 백성을 담보로 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었는가. 

송시열이 대답하기를, "제갈량의 재주로도 끝내 한나라의 왕실을 다시 일으킬 수 없었으니, 만에 하나 차질이 생겨 나라가 엎어져 망할 근심이 생긴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천하의 떳떳한 의리가 분명하다면 비록 사직이 망하게 되더라도 또한 천하에 대대로 밝은 빛을 낼 것이니 어찌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또한 나는 가만히 하늘의 뜻이 나로부터 머지않아, 아마 이러한 걱정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 -145p


명은 결국 멸망한다.
그럼에도 조선은 숙종 이후 끊임없이 명을 위한 사당과 제단을 조선에 세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역사이던가.
승승장구하던 청도 세상을 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내부의 분열과 외국과의 전쟁 등을 통해 국력은 쇠퇴하고 있었다. 

황제는 뒤늦게 변법자강운동을 받아들여 개혁하려했으나 이마저도 서태후 세력에 밀려 자강 개혁에 실패하고 서양 세력에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고 만다. 

당시 공부 주사 강유위가 상소하여 변법자강의 방법을 온 힘을 다해 아뢰니 청나라 임금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4월에 지시를 내려 변법자강을 국시로 결정하고 강유위를 불러들여 곧바로 총리아문장경에 임명했다. 또한 거인 양계초에게 6품직을 띤 판리역서국사무의 관직을 내렸다. ... 서태후는 변법자강 운동을 싫어하여 8월 수렴청정의 지시를 내리고 청나라 왕을 서원에 있는 태액지 안의 영대에 깊숙이 가두고, 담사동 강유부 양심수 양예 임욱 유광제 등 여섯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강유위는 영국 관할령 싱가포르로 도망나갔고 양계초는 일본으로 도망쳤으니, 이것이 무술정변이다. -169~170p

조선의 마지막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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