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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category 리뷰/책 2021. 11. 16. 17:36

나는 철학과 철학자와 친하지 않다.
몇몇 철학자들의 이름과 그가 어느 철학파 분류에 속하는지 정도만 겉핧기로 아는 정도이다.
우선 철학이 내 삶에 크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고 철학과 철학자들을 매칭시키는게 마치 암기 공식처럼 느껴져서 싫었던 것 같다.

살아갈수록 좋은 일보다는 곤란을 겪는 경우가 늘어간다.
인생이 왜 이리 안 풀리지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시기와 상황이 조금씩 다를 뿐 저마다의 곤란을 겪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드니 현실감이 는 것일수도 있는데 좋은 말로 말하면 현실성이고 회의적 인간이 된 것일테다.
어렸을 적 있었던 긍정마인드가 이제는 내게서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철학이 왜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없을까.
왜 어렵게만 느껴질까 생각해봤는데 철학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도록 만들기 때문이었다.
철학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애시당초 방향이 틀린 것이었다.
철학은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만들어낼 뿐 결과를 만들어낼 순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부분은 상실, 늙어감,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내겐 사회에서 만난 스승님이 계신다.
20대까지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나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30대가 넘어서야 어느 정도의 안정이 찾아왔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솟아올랐다.
그 당시 만나게 된 분이다.
나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 생각을 오류라고 내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오만한 학습자였다.
그런 내게 스승님은 너는 다양한 생각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었다.
스승님은 내게 상실이란 단어를 가르쳐주신 분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까지 큰 상실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스승님은 여러 번 상실을 겪으셨다.
작게는 노트북 데이터를 몽땅 날려먹은 일부터 크게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런 일을 어떻게 견디고 넘기실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흘러 만나뵙게 되었을 때 스승님은 시간이 가서 조금은 강도는 약해진다하더라도 상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문득 문득 배어나온다고. 
헤밍웨이도 단편소설 모음집 전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걸 보자마자 스승님의 노트북 사건이 생각났다.
글쟁이는 아닌데도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상상조차 하기가 싫다.

이 책의 한 챕터를 보부아르(그것도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반가웠다.
몇 년전만 해도 어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얼마전부터는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가는 주름이 원망스럽고 짙어진 다크서클과 마스크 밖으로도 선명히 보이는 깊어진 주름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이렇게 나도 나이가 드는구나. 
길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보부아르에게 던진 한 마디는 나도 좌절감이 들게 했다.
"저희 엄마 같으세요."
나이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는 말은 더 암울하게 만든다.
나의 고집과 아집이 갈수록 더해진다니...
그렇게 늙긴 싫은데. 난 정말 그러기 싫어.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건강함은 나와 주변 이들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는 추잡하게 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크다.
여러 가지 조언이 있지만 노년을 위해 습관을 들인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라 생각했다.
60대가 되어도 늘 하던 것들을 계속 했다는 보부아르.
글을 쓰고 읽고 음악을 듣는 습관. 거기에 걷기까지 더한다면 지금의 나와 정확히 들어 맞는다.
얀제까지나 그렇게 살고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상실과 이어지는 측면이 많다.
최악의 상실이 죽음이 아닐까?
어쨌든 인간이라면 어떤 나이가 되었든 죽음이란 것이 낯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막연해서 무섭고 두려운 것. 불안한 것.
죽음을 생각하거나 상상한다고 해서 선뜻 떠올려지지는 않는다.
죽음이 내게 어렴풋이 와 닿은 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크게 아끼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내심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사업이 어려워지신 뒤로 할아버지께선 상실감이 크셨는지 고향에 가셔서 얼마 안되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곁에서 돌아가신 것도 아니었는데 충격이 컸다.
부모님은 더 상실감이 크셨겠지~ 
상실과 죽음은 이처럼 이어져 있다.
헌데 몽테규와 죽음이 무슨 관련이 있지 싶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중요시여겼다는 점이 저자를 이끈 것이 아닌가 싶다. 이건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놀라게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는 것.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에게서 피어나는 의심들을 거둘 수가 없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할테니까.
막연한 죽음을 상상하기 어렵다면 몽테뉴처럼 삶을 잘 살아내려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 뿐이다.

이 책은 철학자가 관련지은 장소를 여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읽기 쉽고 철학이 일상까지 들어온 느낌이라 좋았다.
시몬 베유와 세이 쇼나곤이라는 이름 모를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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