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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category 리뷰/책 2021. 5. 28. 13:10

나는 소설에 대한 흥미가 없는 편이다. 주로 읽는 책들은 논픽션이 많아서 기계적이고 딱딱한 문체의 내용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은 달랐다. 이런 소설이라면 나도 읽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이는 다른 소설처럼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소설이 아니여서 그랬던 것 같다.
장소는 다름 아닌 한국. 그리고 멀지 않는 현대사. 외국소설을 읽을 때처럼 멀게 느껴지지 않았고
한국전쟁사를 공부하면서 공부했던 사실들을 소설적 장치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식민지를 벗어나 이제는 안정적인 국가에서 살 수 있으려니 생각했던 국민들의 생각은 전쟁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국민들을 우롱한 채 도망가버렸고. 서로를 의심하게 된 사람들과 황폐해진 국토만이 남았다. 
그 이후로 3년을 내홍을 겪었던 걸 생각하면 그 시절 국민들이 어떻게 견뎌냈을까 생각할수록 살 떨리는 경험이다.

오빠가 죽었을 때 구체적인 묘사가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데 마치 시체를 옆에 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부란의 냄새라니... 먹고는 살아야 한다고 숙모가 내온 팥죽이라니. 나라면 도저히 먹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주인공이 피엑스에서 일하면서 벌어지는 상황과 내면적 갈등은 공감이 가면서도 결국 주체성을 가지고 버텨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연애와 결혼 상대도 피엑스에서 만나신 걸 보면 피엑스 자체는 싫어하셨을 수도 있지만 좋지 않은 기억만은 아니셨을 것 같다.

선생님의 20대는 너무나 치열하셨을 것 같다.
외부적 상황으로 대학을 얼마 다니지도 못하고 피난을 가셔야 했다.
남으로 북으로 옮겨 다니며 신체적으로도 힘들었겠지만 이 사람이 흰색인지 붉은색인지 의심하며 다가갈 수 밖에 없다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였을까.
부산으로 피난민들이 몰렸다는 것은 많이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서울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뀐 곳이기에 더 피해가 집중된 곳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말처럼 전쟁 초기 차라리 빨리 부산 쪽으로 피난을 가실 수 있었다면 오빠 분도 더 오래 사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미래를 어찌 재단할 수 있겠는가. 
좋든 싫든 운명을 받아들이고 온 몸으로 전쟁을 겪어낸 선생님과 가족의 이야기는 내게 큰 감동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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